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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

청담동 쇼핑 스팟의 형성

by macrostar 2023.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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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썼던 것. 약간 덧붙였던 것들은 여기(링크) 참고. 1990년대 중반 즈음을 생각해 보면 고급 패션 브랜드 단독의 대형 매장은 거의 없었다. 지금의 홍대 주차장 거리에 2층 규모의 커다란 아르마니 매장이 있었던 기억이 있지만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었다. 고급 브랜드라면 보통 삼성동, 영동, 압구정동, 서초동 등지의 백화점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IMF 시절을 지나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대형 플래그십 매장이 청담동 거리를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0년 정도의 세월이 지나갔지만 화려한 고급 패션의 거리라면 여전히 청담동의 패션 거리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 청담동이 되었을까.

 

1961년 명동 쇼핑 지도.

 

한국 전쟁이 끝나고 남대문과 동대문 지역이 일상복 패션의 중심이 되었다면 또 다른 편에 명동이 있었다. 명동은 전쟁 후 도시 재개발과 함께 본격적인 상업지구로 발전하기 시작하며 1960년대에는 문인, 예술인의 집합장소였다가 1970년대에 들어서며 한국 최고의 패션 거리로 본격적으로 부상했다.

 

괜히 명동이 선택된 건 아니었다. 최경자는 일본에서 양재 기술을 배워온 후 1937년 지금의 북한 함흥에 양장점과 양재전문학교를 설립했다. 그러다가 한국전쟁이 끝난 후 명동에 국제양장사를 열었다. 미국에서 패션을 공부하고 돌아온 노라 노도 1952년 명동에 노라노의 집을 오픈했다. 그리고 최경자 디자이너가 1961년에 국제복장학원(현 국제패션디자인직업전문학교)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디자이너를 배출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디자이너와 학교를 나와 새로 진입한 디자이너들이 명동의 골목 여기저기에 매장을 열었다. 상권의 집중이 시작되면서 당시 종로, 광교에 흩어져 있던 다른 양장점도 명동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시 양장점에서 맞춤복을 사입는 주 고객 중에 입학, 졸업을 앞둔 대학생도 많았기 때문에 이대 등 여자 대학 근처에도 양장점 밀집 지역이 형성되었다. 이렇게 명동이나 이대 앞을 배경으로 성공한 디자이너들로 이신우, 진태옥, 박항치, 트로아 조, 문영자, 앙드레 김, 설윤형 등이 있었다.

 

1970년대까지 지속되던 명동의 패션 중심 시대는 1980년대 기성복 붐이 찾아오고 강남 개발이 마무리 되면서 급격하게 쇠락하기 시작했다. 특히 명동의 비싼 임대료와 극심한 주차난 등이 큰 문제였던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처음에는 판매 기능보다는 제품 공급과 제작 기능에 치중하는 본사 건물을 겸한 매장으로 교통도 편리하고 쇼핑 환경 조성에도 유리한 강남으로 이주를 결정했다.

 

당시만 해도 명동은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패션 중심 지역이지만 강남의 매장은 동네 장사라며 경기 변동의 영향이 적은 명동을 그리워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명동에 자리를 잡고 있던 디자이너들이 부유한 지역 소비자들을 따라 강남, 압구정동, 청담동 등 한강 남쪽으로 이전을 본격화하면서 이 지역이 서서히 명동을 대체하는 패션 거리로 재편되기 시작한다. 1982년 디자이너 박항치가 청담동 교회 옆에 매장을 냈고 이후 설윤형 등이 명동에서 건너와 청담동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중앙디자인그룹 콘테스트 입상자들인 김동순, 박윤수, 이상봉 등도 청담동과 압구정동을 중심으로 매장을 내면서 새로운 패션거리를 만들어 가게 되었다.

 

특히 1980년대 말에 중요한 전환점이 있었다. 즉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해외 브랜드도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거다. 제냐, 버버리, 발렌티노 등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들은 보통 대형 백화점의 수입 매장에서나 볼 수 있었는데 직수입 상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매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런 고급 브랜드 상품은 올림픽을 기점으로 한 수입 자유화 움직임 속에서 부유층의 전유물에서 중산층의 멋으로 소비 계층을 넓혀 갔다.

 

갤러리아가 한양 쇼핑과 파르코이던 시절 청담동 쇼핑 지도.

 

이런 식으로 국내 패션 디자이너들과 수입 브랜드들이 강남지역 개발과 더불어 등장한 신흥부유층을 위한 패션 공간이 되어가는 압구정동, 청담동에 자리를 잡아가면서 대기업들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1985년에는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이 개점했다. 1990년에는 1984년에 문을 연 패션 전문 백화점 파르코와 건너편 한양 쇼핑 영동점을 합쳐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이 만들어 진다. 신세계 백화점의 경우 1990년대 들어서면서 압구정동과 청담동에 에스까다를 취급하는 매장 로지에르와 대형 아르마니 매장을 오픈했다. 로지에르는 1996년 여러 해외 브랜드를 취급하는 S.I 부띠끄로 확장 개편되었다.

 

1990년대 초에는 이런 식으로 지역별 윤곽이 만들어졌다. 현대 백화점 압구정점을 중심으로 구정 중학교에서 신사 중학교 사이,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는 젊은 고객을 대상으로 한 패션가가 형성되었고 특히 스포츠웨어 브랜드 등이 문을 열었다. 이렇게 현대 백화점에서 갤러리아 백화점 사이에 젊은이들의 패션 거리가 형성되며 북적거리기 시작하자 그 너머 한층 조용하고 대중 교통도 불편한 청담동에는 레스토랑과 카페, 화랑, 예술가, 유학생, 고급 브랜드 매장을 중심으로 보다 진중하고 고급스러운 거리가 형성되었다. 가까운 거리도 차를 이용해 건물 사이를 오가는 모습도 이 거리 만의 독특한 모습을 만드는 데 일조를 했다. 또한 도산대로 변에는 수입 가구점과 인테리어 점 등이 들어섰다. 이렇게 그리 멀지 않게 떨어져 있는 각각의 거리는 미묘한 입지의 차이를 기반으로 역할을 분담해 갔다.

 

1990년대 중반이 되면서 서울시, 강남구, 패션협회 등이 나서 패션 거리에 공식적인 이름이 붙기 시작했다.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 청담동 패션 특화 거리 등이 지정되며 사치와 낭비 등 다소 부정적인 느낌이 있던 이미지를 쇄신하고, 패션 관련 축제의 개최나 패션 단체의 입주 지원 등에 행정적 도움을 제공했다. 강남구에서도 택지의 용도 전환을 지원하고 문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패션 특화 거리 형성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1990년대 말 IMF 구제 금융 시절의 영향을 받게 된다. 청담동의 중심이었던 국내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는 이 시기에 상당한 경영난을 겪게 된다. 그리고 한국 기업을 통해 상품을 수출해 온 해외 브랜드는 IMF를 계기로 철수했다가 경제 위기가 해결되기 시작하며 자사 설립, 직영점, 대규모 독립 매장을 오픈하는 식으로 직접 들어오기 시작했다. 1997년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의 프라다 매장 오픈에 이어 2000년까지 구찌, 루이 비통 등의 대형 플래그십 매장이 차례로 문을 열면서 청담동 패션 거리는 본격적인 해외 명품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주변에도 소규모 편집 매장이나 해외의 신예 브랜드를 소개하는 멀티숍들이 생겨나며 패션 트렌드를 이끄는 중심이 되었다.

 

하지만 높은 임차료와 매장 운영비로 인해 어지간한 브랜드는 버틸 수가 없는 곳이 되어갔다. 즉 청담동 패션 거리 안에서도 양극화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최고급 브랜드만이 남게 되고 이런 브랜드들은 세계적인 건축가와 함께 주기적으로 대형 매장의 외형과 내장을 리뉴얼해 가며 최전선에서 달리고 있는 최고급 브랜드의 명성을 유지해가고 있다.

 

그에 비해 자본력이 부족하거나 온라인 중심 등 다른 방식을 택한 명품 브랜드들은 청담동을 떠났다. 특히 구석구석에서 젊은 고객을 상대하던 특색있는 멀티샵, 카페, 잡화점, 갤러리 등은 2010년대 후반부터 부상하기 시작한 로컬 문화와 브랜드에 대한 관심, 뉴트로 트렌드 속에서 이태원, 한남동, 을지로, 성수동 등지로 자리를 옮겨 갔다. 이런 변화 속에서 청담동 일대는 몇 년 씩 걸리는 대형 플래그십 매장의 공사장 펜스와 브랜드가 빠져 나간 자리에 공실 임대를 알리는 건물주의 전화번호만 줄줄이 널려 있는 썰렁한 분위기만 잔뜩 보이던 시절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런 시기를 지나 청담동, 압구정동 일대는 다시 개편을 시작하고 있다. 예컨대 2019년, 2020년에 샤넬이나 루이 비통 등이 새로운 플래그십을 오픈했다. 압구정동도 2017년에 상권 활성화를 추진하며 착한 임대료 사업 등으로 젊은 창업가나 신진 디자이너 유치를 시작했다. 공실 건물을 단기간 임대해 오프라인 쇼룸이나 팝업 스토어로 활용하는 등 다양한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2010년 즈음부터 에르메스와 랄프 로렌 매장을 중심으로 청담동의 라이벌로 부상하기 시작한 도산 공원 일대에는 브랜드의 개성을 담아 낸 체험형 문화공간 타입의 플래그십 매장 들이 많이 들어섰다. 랄프 로렌 매장은 나갔지만 이쪽에는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젊은 국내 디자이너의 매장과 향수 브랜드, 친환경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등이 들어가며 공원, 레스토랑 등과 어울려 청담동 패션 거리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지역간 이합집산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시간의 흐름과 상황의 변화, 경쟁 속에서의 지역의 전략, 유행과 운 속에서 영광과 좌절의 시기를 보내며, 거리는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 간다. 어디가 가장 잘 나가는 곳인지는 변해가겠지만 도로와 건물의 자리가 그대로 있는 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 계속 남아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시대의 변화와 만나며 같은 모습이지만 다른 광채로 빛나기도 한다. 나이를 먹어가는 도시가 품고 있는 즐거움이란 바로 그런 게 아닐까.

 

 

이걸 90년대 니뽄필, 스트리트 패션, 힙합, 스니커즈, 멀티샵, 편집샵 등의 관점으로 여길 바라보면 압구정 로데오에서 갤러리아, 청담동 분더샵 너머, 현대 백화점을 바라보는 이야기가 된다. 청담동이 명품 거리로 재편되는 동안 압구정에는 90년대 말부터 힙합, 나이키 중심 멀티샵이 2000년대 초반까지 어이지는데 이후 몇 개 있던 스케이트 보드 중심의 스트릿 패션 샵들이 인기를 끌게 되고 2000년에는 부산 카시나가 압구정에 매장을 오픈한다.

 

조금 더 시야를 넓혀 서울을 백화점 외 대형 쇼핑몰 시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90년대 문정동, 창동 등 아울렛 거리에서 1998년 밀리오레, 1999년 두타, 2001년 마리오 아울렛 등 대형 저렴 쇼핑 스팟이 오픈했고 2000년에는 코엑스 몰이 등장하기도 했다. 배정남, 반윤희, 쿨케이 등은 2006년, 2007년 즈음. 그리고 2005년 유니클로, 2008년 자라, H&M이 국내 런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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