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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가리다

by macrostar 2022.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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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얼굴을 가리는 '패션'은 두 가지 형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코로나 시대의 마스크의 패션 타입 발전형. 이건 어차피 뭔가 쓰고 다니니까 좀 폼나게 하자는 식으로 꾸미는 형태의 패션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얼굴을 통으로 가리는 스타일이다. 이건 예전에 발렌시아가나 마르지엘라 같은 데서 가끔 선보였었다. 털북숭이 페이스 마스크라든가 보석이 잔뜩 붙은 페이스 마스크라든가 하는 것들이다. 카니예 웨스트의 페이스 마스크는 후자의 변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변형을 여러 군데서 이어 받고 있는데 예를 들어 베트멍이 있다. 요즘은 vtmnts인가. 인스타그램 가봤더니 vetements라는 이름 아직 쓰는군.

 

 

왜 얼굴을 가릴까. 카니예에 대한 3부작 다큐 지-니어스를 보고 난 인상을 두고 말하자면 그게 폼나고 멋지고 더 관종이 될 수 있다 생각해서겠지. 물론 그게 다는 아니고 다큐를 보면 특히 아이들에게 너가 무엇이든 상관하지 말고 꿈을 쫓아라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남들은 잘난 척 한다, 관종이다 어쩌구 하지만 날 봐라 해냈잖아 뭐 그런 투인데 그렇다해도 중요한 말이다. 여기서 "너가 무엇이든"의 관점에서 마스크를 쓴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패션을 통해 자신을 무명씨, 무인칭으로 만드는 거다. 패션에서 기존의 성역할 편견에 대항하기 위해 남성성, 여성성을 지우는 작업이 최근 꽤 볼 수 있는데 역시 생긴 모습을 상관하지 말고 내가 하는 걸 봐 라는 식으로 등장했다 볼 수 있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 따위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향한 괜찮은 전략이라 할 수 있을 거 같다.

 

카니예가 페이스 마스크를 처음 쓴 건 2012년이라고 한다. 발렌시아가의 마스크를 썼다. 그리고 간간히 썼는데 2021년부로 쓰고 있는 마스크는 약간 다르다. 별다른 치장이 없고 정말 가리는 데 집중한다. 가끔 피지컬 갤러리의 빡빡이 아저씨 같은 가면을 쓰기도 하는데 비슷한 결이다. 

 

 

베트멍의 작년 말에 있던 패션쇼에서 모두 페이스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당시 구람 바잘리아는 SNS 시대에 필요한 프라이버시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익명성을 통해 감춰지는 자아에 대한 이야기다. 좀 넓게 따지고 보면 많은 게 공개되어 있는 현실에서 상대방의 모습을 보고 미리 가질 인종적, 성적 편견에 대한 일종의 방어막으로 볼 수 있으니 비슷한 큰 맥락 아래서 다른 초점을 가지고 나왔다 할 수 있긴 하다. 

 

그렇지만 이런 방식은 아주 손쉽게 소수, 피지배층에 대한 탄압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내가 이런 데 뭐 어쩔래에서 약간 후퇴한 듯한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SNS 등을 통해 다수의 군집이 상당히 쉽게 이뤄질 수도 있는 상황이고 그러므로 뭐 어쩔래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면이 있다. 결국 저런 걸로 패션 안에서 어떤 맥락과 의미있는 태도를 만들기는 어려운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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