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유명무실해진 카테고리 ShopnBuy를 대체할 겸 중고옷 열전이라는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었다. 열전... 이라니 뭔가 대단해 보이지만 그냥 구입했던 중고옷 들 이야기를 소소하게 적어볼까 한다. 옷을 좋아하고 관심도 많지만 빈곤한 패션 칼럼 쓰는 사람 처지라 딱히 뭘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고 스타일이라곤 뭘 고르는 게 아니라 매대와 중고에 놓여있는 게 기준이 되고 있지만 그래도 궁금한 옷은 많아서 중고 매장에서 옷을 꽤 구입하고 있다.
대부분은 이걸 입으면 멋지겟군.. 폼나겠군.. 이런 게 아니라 이 옷이 궁금하고, 알아보고 싶고, 뭔가 할 이야기가 있을 거 같아서 등등의 이유가 많기는 하다. 옷이 재미있는 점이 이런 이유든 저런 이유든 입고 다닐 수 있다는 거다. 즉 귀중한 옷을 모으는 컬렉터도 (입진 않겠지만) 입을 수 있고, 나처럼 궁금한 데 살 수 있으니 산다 해서 옷장에 옷을 들여놓은 사람도 아무튼 입을 수 있다.
옷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구글 독스의 스프레드시트에 연도별로 구입한 옷을 적어 놓는다. 구입처, 가격, 있다면 이유, 수선을 했다면 수선 내역 등을 적어 놓으면 나중에 이 옷이 얼마나 되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옷을 통해 뭘 얻었는지 등등을 조금 더 데이터 기반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무튼 이 카테고리는 일종의 아카이브다. 사진 같은 건 예전에 다른 이야기 하다가 올린 경우도 많이 있기 때문에 겹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이곳을 자주 찾아오시는 분이라면 어디서 본 건데! 싶을 수 있는데 그려려니 해 주시길. 대략 옷 소개, 왜 샀는지, 입고 보니 특징이 뭐였는지, 혹시 같은 걸 가지고 싶은 분들을 위해 생각하는 가격대(구입한 가격대가 아니라), 단점은 있는지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쓰게 될 거 같다. 평소 옷에 대해 알고 싶을 때 검색이 잘 안되서 시작하는 거기 때문에 몇 가지 키워드도 적어볼 생각이다. 앞으로 쓸 이야기에서는 위에 적은 카테고리의 설정 의의에 대한 이야기는 제외하고 곧바로 관련 키워드로 시작하다. 그러므로 첫번 째 옷은 Carhartt의 8C 자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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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하트의 데님 초어 재킷이다. 칼하트 하면 브라운 코튼 덕이 가장 시그니처고, 또 칼하트의 초어 자켓이라고 하면 블랭킷 안감이 붙어 있는 게 기본템 인데 이건 브라운이 아닌 데님이고 블랭킷 안감도 없는 무안감 옷이다. 이런 아웃사이드 옷은 싸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좋다. 100주년 기념 라벨이 붙어 있는데 그러면 1989년이지만 100주년 기념 라벨이 붙은 모델이 1989년 이후에도 좀 나온 게 아닌가 싶기 때문에 딱 1989년에 만든 옷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유니언 라벨이 붙어 있는 미국 제조 모델이라는 점에서 최근 제품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고 또 데님 초어는 요새 나오지도 않고 있다.
이 옷을 구입한 이유는 초어 자켓을 좋아하고(어딘가 수상한 무명씨 라글란 하나, 포인터 브랜드의 드롭 숄더 버전 하나를 가지고 있었는데 포인터 브랜드는 친구를 줬고 대신 조금 더 큰 사이즈를 찾고 있는 와중에 칼하트 데님을 찾아 구입했다), 칼하트의 미국 제조 시절 데님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고, 칼하트의 옷 자체에 궁금함이 많은 시절이기도 했고, 또 약간 큰 사이즈의 하늘하늘한 느낌 나는 데님을 입어보면 기분이 어떨까 싶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이유들 중 구입하고 보니 : 칼하트 데님 맛보기는 약간 문제가 있는 게 6~8온즈 가량의 너무 얇은 데님이라 본격 워크웨어 풍 데님하고는 느낌이 좀 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주 파란 색 + 털이 보송보송'이라는 점은 좋아하는 타입이다. 또 예전 미국 옷이면 보통 38, 40 정도 사이즈를 입는 데 이건 44 사이즈다. 커다란 옷을 입어보고 싶었던 건 엣시 같은 데 나온 사진을 보고 편해 보여서 시도한 건데 막상 입어보니 이거보다 좀 더 커야하지 않나 싶어졌다. 인스타그램에 나온 커다랗고 박시한 모습은 대략 48 사이즈 정도는 입어서 택배 받아서 열어 봤을 때 이거 담요 아닌가 하는 느낌은 나야하는 듯 싶다.
이 옷을 검색해 보고 싶으면 carhartt 8C라는 이름을 찾으면 된다. 혹은 carhartt denim chore jacket을 검색하고 블랭킷이 붙어 있지 않은 버전을 찾아보면 된다. 칼하트는 한동안 알파벳 + 숫자 이름이었다가 요새는 숫자만 들어 있는 이름을 많이 쓰는 데(디트로이트 자켓을 보면 예전에는 J001, 요새는 103828) 그 전에는 이런 로트 번호가 없었던 시절도 있었고 이렇게 숫자 + 알파벳 시절도 있었다.
가치 평가와 리세일 관점에서 보자면 미국산 칼하트 데님을 찾는 사람이 세상에 있긴 할텐데 아직 멀쩡한 것도 워낙 많고, 빈티지를 찾는다면 리바이스와 리의 세계에 더 흥미진진한 게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무슨 특별한 사건이 생기지 않는 한 별볼일은 없다. 칼하트 중에서도 가치를 인정받아 비싸게 거래되는 모델들이 있는데 예를 들어 1950년대에 나온 디트로이트 자켓이나 스투시가 뭔가 적어 놓은 토미 보이 디트로이트 자켓 같은 것들 정도다.
라벨이 하트 모양이라면 꽤 비쌀 수도 있는데(60년대 제조) 차라리 일본 옥션에 올리는 게 나을 지도 모르겠다. 잘 팔릴 지는 모르겠지만... 하트 라벨, 탈착식 단추 등등 빈티지 취급을 제대로 받을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긴 하다.
이 말은 유니언 라벨 8C 자켓 정도면 빈티지 풍 데님의 느낌을 나름 저렴하게 즐겨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4, 5만원 정도면 괜찮지 않나 싶다. 데드스톡에 가깝다면 두 배 쯤은 더 줄 수 있을 거 같다.
칼하트 8C의 단점이라면 단추를 꼽을 수 있다. 반짝반짝 거리는 금색 단추인데 그 반짝거림이 약간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리고 단추가 무게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 타입이다. 편하긴 할텐데 옛날 옷이라면 약간 무게가 느껴질 정도가 좋지 않나 생각한다. 리바이스의 딴딴한 버튼은 그런 점에서 매우 훌륭하다. 버튼은 리바이스가 최고다.
그리고 손목 부분. 리의 초어 자켓 91-J 같은 옷의 세 단추 커프스를 좋아하는 데 그런 점에서 약간... 아쉽다. 이걸 엔지니어 커프스라고 하든가 뭐 그렇다. 물론 칼하트는 두 개 버튼 형태로 또 계속 가고 있으니까 그런 것도 나름 의미를 찾을 수 있고.
마지막으로 주머니에 빨간줄 스티치가 있는 데 저게 8C의 시대별 모델에 따라 사진 왼쪽에 보이는 주머니 기준으로 / 형태인 것도 있고 \ 형태인 것도 있다. 위 사진은 \ 형태. 하지만 / 이렇게 생긴 버전의 외부 지향적인 모습이 약간 더 어그레시브하게 보이는 게 워크웨어 분위기가 더 나지 않나 생각한다. 하지만 100주년 기념 모델은 다들 저런 \ 형태인 듯 하다. 그렇다고 /도 찾아나서는 건 낭비겠지.
/가 역시 더 강해 보인다.
셔츠 자켓류 보다 살짝 두꺼운 정도로 지금보다 약간 더 선선해 지면 가볍게 들고 다니며 입을 수 있는 좋은 옷이다. 얇은 데님은 티가 많이 안 나긴 하지만 앞으로의 색 변화에 대해서도 흥미진진할 거 같아서 기대를 해보고 있다. 먼 훗날 옷이나 나나 별탈 없이 잘 지내고 나서 이 옷에 대해 또 이야기를 할 기회가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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