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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패션, 이해 혹은 공존

by macrostar 2021.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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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일상복 탐구라는 책에서(링크) 우리는 바로 옆 사람의 착장도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필요도 없는 남의 일이다. 이 말을 조금 더 확장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해를 하려고 하는 넓고 깊은 마음씨 같은 게 아니라 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범죄나 악행이 아닌 이상 같이 사는 방법, 요령을 아는 일이 더 필요하다는 의미다. 다른 사람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전혀 다른 사고 체계와 이해 체계가 만들어 낸 우연의 일치를 보고 혹시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이 많은 오해를 만든다. 사실 이런 내용을 중심으로 한 책을 얼마 전에 마쳤고, 그렇지만 아직 갈 길이 엄청나게 멀어서, 올해 안에나 나오면 다행인 그런 일이 있다는 걸 살짝 전하며...

 

물론 이해를 할 수 있다면 받아들이기가 더 쉬울 수가 있을 거다. 그렇지만 불가능한 것들이 많다. 예컨대 함께 일하는 사람이 어떤 종교의 신자거나 어떤 종족의 구성원, 완전히 다른 문화권, 성적 태도 등등의 이유로 아예 사고의 발상과 논리의 전개 방식 자체가 다를 수도 있다. 그럴 때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하는 테크니컬한 면이다. 딱히 뭔지는 잘 모르더라도 그래도 함께 즐겁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이 더 중요하다. 물론 이건 자신에게만 요구되는 건 아니다. 공존을 위해서는 고집할 건 고집하되 내줄 건 내줘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요령이 익숙해지면 점점 이해하기 어려운 게 등장해도 또 해결할 방식을 함께 고민하게 될 거다. 이건 매우 이상적인 이야기지만, 또한 현실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는 패션에서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취향과 서로 다른 목표, 서로 다른 미감을 가지고 각자가 알아서 자기 마음에 드는 옷을 입는다. 그래도 같은 동네라면 어딘가 통하는 데를 발견하기 약간은 더 쉬울 수도 있었겠지만 동양인, 서양인 뿐만 아니라 국적 불명, TCK, 직접 적립한 삶의 방식 등등은 더 늘어나고 있다. OOO-라는 잡지를 만들 때(링크) 1호에서 TCK를 다룬 이유는 그런 것 때문이다. 같은 문화권 안에서도 근거 집단, 취미 등등에 따라 사고의 방식은 갈라지고 거기에 LGBTQ+ 등등 여러 다른 요인들도 있다. 이런 건 계속 늘어날 거다. 다양성은 존중의 대상이라기 보다 당연한 현실이다. 그러므로 단일 문화권에 정상 가족 신화 같은 건 앞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사고의 확장을 가로막는 장벽이 될 뿐이다. 결국은 공존의 방식을 깨닫고, 훈련하고, 만들어 가는 게 나의 생각과 취향, 착장의 방식을 방해 받지 않고, 존중 받으며 쌓아가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런 장벽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일부는 자기와 다름에 대한 공포, 익숙하지 않음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착장에 단순 비호감의 마음을 가지는 걸 넘어서 혐오와 공격을 가하는 경우도 많다. 보지 않을 권리 같은 게 세상에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는데 불필요하게 과장되어 있다. 고개만 돌리면 안 보이는 데 왜 남을 사라지라고 하는 걸까. 혼자 상상으로 괴물을 만들고 괴물이 무서우니 피하라고 한다. 게다가 이건 패션에 너무 익숙한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왜 저렇게 입고 다닐까 하는 태도는 그저 세상을 옷 중심으로만 바라본 결과일 뿐이다. 어떻게 저런 이야기를 할 정도로 단순한 거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봐야 한다. 이런 태도 역시 자신의 삶의 방식을 타인에게 직접 빗대는 단선적 사고에서 비롯된다.

 

그렇다고 더 재미있는 패션, 더 재미없는 패션이 없다는 건 아니다. 패션의 시대와 환경과 더 밀접하게 결합하고 있고 그러므로 그런 흐름에 가속 페달이 되어 준다거나 혹은 조금 더 확장된 효과적인 방식의 영감을 제공한다든가, 혹은 이런 혼란의 와중에 유니크하고 유의미한 무언가를 만들어 간다든가 하는 등등 여러가지가 계속 등장한다. 이런 디자이너의 활동 외에도 자신의 삶에 가장 적합한 착장의 방식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것들은 여전히 패션의 깊은 재미로 존재한다. 또한 재미가 없는 건 예컨대 과거의 질서를 되돌려 놓으려는 부질없는 준동 같은 것들일 거다.

 

결국 이런 건 어디까지 생각을 해나갔는가 하는 지식과 어떻게 자신의 방식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가 하는 훈련의 문제다. 그런 훈련에 패션이 도움이 될 부분이 나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정 어려우면 패션쇼를 보면서 대체 이상한 옷이 나온다면 저게 뭐야! 하는 시간에 저런 옷을 입은 사람이 옆에 나타났을 때 아무렇지 않게 있을 수 있는 연습을 하는 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거 같다. 프라이드 퍼레이드에도 가고, 패션위크 시즌에 DDP 앞에도 가고, 또 사람 많고 쿵쾅거리는 데 가보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괴상한 걸 많이 보고 혹은 조금 더 나아가 경험하고, 심지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는 건 득이 되면 되었지 해가 될 일은 없다. 이것저것 많이 보다보면 저 옷은 나름 이런 재미가 있군 하며 (난 입지 않겠지만 - 그것도 긴 세월 안에서 또 모를 일이다) 또한 어느덧 익숙해져 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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