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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즐거움

옷에 필요하지 않은 꾸밈들

by macrostar 2019.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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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복, 군복, 운동복 같은 옷들은 특정한 목적을 위한 옷이다. 최고의 효과를 목적으로 하고(그 효과라는 건 일단 방해가 되지 않고 몸을 보호하는 일이다) 모든 부분들은 필요에 의해 존재한다. 얼마 전 삼척항 북한 목선 사건 기사를 읽어보는데 어부는 단추가 달린 옷을 입지 않는다고 한다. 그물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각각의 영역에는 각각의 이유가 있다. 예전 어부의 옷을 복각하면서 뭔가 허전하다고 단추를 달면 안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목적 지향적 단순함은 지나친 꾸밈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사람들, 그런 이유들이 있다는 게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등등에 의해 패션화되었다. 단순함, 무뚝뚝함, 목표를 향해서만 돌진하는 호쾌함, 그리고 단순한 장치들 속에 숨겨져 있는 옛 조상의 지혜들이 모두 멋짐의 일부가 된다. 

 

 

예를 들어 복각 청바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목적을 위해 스티치가 저렇게 만들어 졌는지 알고 있다(참고로 2차 대전 버전의 복각판이니 주머니 위의 갈매기 모양은 페인팅일 거다). 각자의 기준이 생기고 너무 꾸몄네, 이건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네 등등을 판단하게 된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그저 하얀 벽, 그저 눈만 덮여 있는 평평한 바닥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어이 뭔가를 그리고 기어이 발자국을 남긴다. 이건 각자의 성향이다. 그저 하얀 게 나을 것도 없고 뭔가 잔뜩 그려져 있는 게 나을 것도 없다. 하지만 불만은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자기네 벽이 아닌 한 맘대로 치워버릴 순 없다. 그저 고개를 돌리는 정도가 최선의 대응이다. 그렇지만 옷은 너무 한데 싶은 건 사지 않고 입지 않아도 된다.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심플한 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위한 다양한 옷들이 세상엔 또 있다. 서로 상관하지 않고 즐겁게 살 수 있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이전의 기능적 웨어 브랜드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책 레플리카(링크)에서는 미국 브랜드 이야기를 주로 했지만 꼭 미국 브랜드만 새로운 포지션을 얻은 건 아니다. 프랑스의 베트라, 르 라부어, 르 몽 생 미셸, 독일의 켐펠 등등도 있다. 물론 프랑스처럼 패션이 고도로 발달한 나라에서 베트라 같은 옷은 그냥 오픈마켓에서 파는 작업복과 다를 바가 없다. 만듦의 방식과 퀄리티에 있어서 딱히 감탄할 만한 부분도 없다. 특정 마을에 모여 있는 원조 맛집촌 같은 거다. 

 

이런 브랜드들은 특히 일본에서 인기가 좋았고 거기서 새 길을 많이들 찾았다. 당통 같은 브랜드는 요리사, 정원사의 작업복을 주로 만들던 회사였고 1970년대 들어서 파리 지하철이나 국철 유니폼 같은 걸 제작했는데 일본의 보이스라는 회사가 기획, 설계, 제조를 하면서 워크웨어 인스파이어드 캐주얼 브랜드로 변신했다. 

 

 

이 회사에서 나온 제품 번호 8490이라는 재킷이 있다. 좋은 옷인데 로고가 잘 안보여서 그런지 지금은 단종되었고 로고가 잘 보이는 비슷한 옷이 나와있다.

 

 

비슷하지만 이건 조금 더 본격적인 워크 재킷 디테일이다.

 

그런데 위 사진에서 보듯 뭔지 모를 덧붙임, 나무 단추를 포인트로 삼고 있다. 하와이안 셔츠 말고는 나무 단추처럼 쓸데 없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데(일단 분실하면 대책이 없다) 경년변화를 노리는 제조자들이 종종 나무 단추를 써먹는다. 그거야 뭐 그려려니 해도 카라 옆에 붙어있는 저 덧붙임은 정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옷을 지지해 주는 목적이라면 충분히 안 보이는 데다 넣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옷의 설명에서도 저 부분을 상당히 강조한다. 빈 자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하는 습성의 산물이다.

 

그렇지만 너무 무리는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약하게 거슬리는 정도에서 멈췄다. 그러므로 투덜거리면서도 입을 만은 하다. 결국 발란스는 이렇게 입는 사람이 맞춰가게 된다. 그러므로 소재가 많을 수록 선택의 폭은 넓어지고 보다 디테일한 부분까지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 게 또 이 방면이 가지고 있는 재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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