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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어느 쪽이 더 웃기는가

by macrostar 2018.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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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패션 칼럼에 유럽 패션에서 미국 패션으로 이동, 합침,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링크). 사실 보낸 제목은 VS.였고 격돌, 대체 이런 느낌을 담고 싶었는데 "결합"이라는 비교적 평화로운 단어를 선택해 주셨다. 


이 대체는 이제 시작이고, 대체가 이뤄질지 실패할지 아직 모르는 일이고, 그 대체의 위력이 하이 패션의 모습을 얼마나 바꿔놓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호들갑을 떨 필요까지는 없는 게 맞을 지도 모른다. 사실 호들갑을 좀 떨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진행되고 있는 상황 중에 할 이야기, 특히 결정적인 장면 같은 게 많이 있는 것도 아닌 게 현실이고.


아무튼 이 대체는 주의깊게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꽤 많은 걸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젠틀한 복식, 포멀 웨어 이런 모든 것들은 영국, 프랑스 등 유럽에서 나왔다. 그리고 이게 대세가 된 데는 새로운 주도 계층, 베이비 부머 등등이 등장했기 때문이고 그들의 급속한 성장 속에서 자기들을 표시할 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가끔 복식의 질서를 영원불멸한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특히 옷에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은 결혼식장에 신랑 신부가 노스페이스 사카이의 고어텍스 자켓 같은 걸 입고 등장하는 일은 (거의... 라고 해놓고 보니 어딘가 있을 법도 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없고 정해진 옷을 입는다. 그렇다면 위에서 말한 대체가 완성되면 신랑 신부가 노페 사카이를 입게 될 거다라고 말하는 거냐 하면 그건 아니다. 결혼식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더 높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턱시도가 필요없어지는 건 이렇듯 옷의 변화가 아니라 가치관의 변화에 달려있다. 


지금의 인권, 다양성, 여성 문제, 성지향성, 인종 문제 등에 대한 변화에 대한 압력이 앞으로 무얼 바꿔놓을 지 모르지만 생각이 달라지면 많은 게 달라지기 마련이다. 한때 부의 상징이자 럭셔리의 최정점이었던 모피에 대한 인식, 소비자의 태도, 하이 패션에서의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같은 걸 생각해 볼 수 있다. 생각보다 빨리 변한다. 하이 패션 역시 세상과 조금 동떨어져서 자기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즐겁게 살고 있던 예전의 방식에서 떨어져 나와 이런 저런 소리를 내보고 있는 곳이 늘고 있다. 


물론 한계는 매우 명확하다. 비싼 옷이란 인간이 완벽할 수 없는 것처럼 그 균열을 이용하고 거기서 생존한다. 그리고 이건 일단 장사라는 점도 중요하다. 인류 모두가 알파고처럼 된다고 해도 하이 패션은 어떻게든 자리를 찾아낼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비난과 비웃음은 지금보다 더 커질 수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아랑곳하지 않고 누군가 비싼 걸 팔고 누군가 비싼 걸 산다.



왼쪽은 스웨인 아데니 브릭의 브릭 컬렉션 중 스트립드 체리라는 이름의 우산이다. 체리 나무를 손으로 깎아 핸들을 만들었고 골드나 실버 플레이트를 옵션으로 붙일 수 있다. 캐노피는 나일론이나 전통적인 방식인 실크 중 선택할 수 있다. 나일론을 고르면 335파운드, 실크를 선택하면 665파운드다. 바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비스포크 우산이라 주문하고 6~8주 쯤 후에 받을 수 있다.


오른쪽은 슈프림 + 노스페이스의 마운틴 자켓이다. 2017년에 나왔던 시리즈로 고어텍스로 만들었다. 노스페이스의 고어텍스 마운틴 자켓은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1990을 기반으로 했을 거다. 이게 구입하려면 얼마쯤인지 잘 모르겠는데 위 사진은 라쿠텐에서 151,200엔에 팔고 있는 거다. 아마 구할 수 있는 가격보다는 꽤 비쌀 거다. 


뭐 이런 얘는 잔뜩 있는데 예를 들어 실크 포켓 스퀘어와 트리플 S 이런 것도 있겠다 등등. 그러고 보니 위 둘은 비를 막기 위한 제품이라는 공통점이 있군. 비는 언제나 인류의 골치거리였다.


약간 극단적인 예시이긴 한데 예컨대 패션에 전혀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사람에게 둘 중에 뭐가 더 웃기냐라고 물어보면 답이 뭘까. 또 젠틀맨의 복식 이야기를 하는 분에게 슈프림 마운틴 자켓은 어떻게 보일까. 마찬가지로 스트리트 패션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에게 브릭 우산은 어떻게 보일까 등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둘의 접점 같은 건 없다. 대체는 가능할 수도 있다. 사람 안바뀐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인간의 마음이란 때로 아주 빠르게 변해서 우산을 들고 다니다가 팔아버리고 마운틴 자켓을 살 수도 있다. 그런 건 모를 일이다.


아무튼 양쪽이 다 상대에게 필요없다는 점은 동일하다. 이 둘은 전혀 다른 질서 아래 놓여있다. 뒤에 놓여 있는 배경을 고려한다면 완전히 다른 세계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 둘은 현재 공존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공존할 거다. 한쪽이라도 없어지는 건 분명 서운한 일이다. 게다가 둘 다 비난의 여지와 비웃음의 여지도 충분하다. 저게 뭐냐! 하면 누구도 할 말이 없고 저게 진짜 멋진거지!라고 해도 사실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어느 쪽이 메인스트림을 끌고 가느냐는 약간 다른 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후 어느 쪽이 끌고 갈 것인가 역시 약간 다른 문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변화는 생각보다 꽤 재밌을 수가 있다는 이야기다. 어느 쪽에든 열린 마음을 가지고 바라봐야 더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마음의 균형이라는 게 그런 식으로 잡을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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