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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즐거움

원래 큰 옷, 옷의 의도를 즐김

by macrostar 2018.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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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옷을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생각해 보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의도를 생각해 보면서 입는 편이다. 물론 사이즈 문제의 경우 세상 전체가 상당히 엉망진창이고 옷의 의도와 그걸 입는 사람의 취향이 결합하기 때문에 상황의 파악이 더욱 복잡해진다.  하지만 예를 들어 같은 브랜드의 다른 옷과의 비교, 다른 브랜드의 같은 옷과의 비교 등을 통해 추론을 해볼 수는 있다. 어차피 확실한 결론이 없는 일이긴 하다.


보통 사이즈 표에 보면 이 옷을 착용하기에 맞는 적정 키, 적정 몸무게, 적정 가슴 둘레가 적혀 있다. 가만 보면 상당히 여유를 가지고 책정되어 있는 게 많은 데 그거 보고 사갔다가 크면 입을 수는 있지만 작으면 아예 입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도 그거대로 입으면 입을 수는 있다. 그러므로 특히 기능성 의류 계열처럼 스펙이니 뭐니를 나열하는 브랜드의 경우 그런 사이즈 표를 따르려고 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것도 그대로만 하면 되진 않는 게 옷의 용도에 따른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M-65 같은 옷을 보면 이런 표가 붙어 있다. 스몰-레귤러 사이즈의 경우 키는 170cm~180cm, 남성 가슴 둘레는 84cm~93cm 정도가 입으라고 되어 있다. 위 아래 사이즈로 겹치는 영역들이 있다. 아무튼 이렇게 적혀 있지만 M-65를 보면 알겠지만 가슴 폭만 110cm는 넘는다. 즉 상당한 여유가 있다. 팔도 엄청 굵다.


왜 그런가 하면 이 옷은 원래 셔츠 위에 그냥 입는 게 아니라 군복 위에 입는 걸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붙일 것도 많고 이거 입고 비도 맞고, 산도 넘고, 잠도 자고 많은 일을 해야 한다. 게다가 미국인 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반 라이프용 옷하고는 사이즈의 감이 다르다. 이런 옷을 도시형 개조판이 아니라 오리지널 판을 굳이 입자면 여러가지 조절을 해야하고 그렇게 해도 기본적으로 딱 맞는다는 기분을 느끼긴 어렵다. 이런 옷이구나... 정도다. 사이즈가 하라는 데로 구입해 보고 싶다면 그 안에 뭘 입을지도 정교하게 선택해야 한다.


이런 거 말고도 트렌드의 변화도 있다.



70년대 홀루바의 카탈로그를 보면 이렇게들 입고 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아무튼 크다. 사실 몸도 크고 옷도 크고 그냥 큰 정도가 아니라 거대하다. 개인적으로는 추위를 많이 타고, 그래서 있는 데로 겹쳐입는 걸 좋아하고, 또 바람을 차단한 상태라면 큰 게 아무래도 더 따뜻하다는 경헙적인 결론으로 큰 겨울옷을 좋아하긴 한다. 그리고 웃기다는 것도 마음에 들고.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크다.


즉 저 시절에 비하면 전반적으로 옷을 작게 입고 있다. 몸의 모습도 잘 살리고, 그래도 따뜻할 정도로 기능성 역시 향상된 덕분이다.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저 시절 사이즈 기준으로 옷을 바라보면 약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마운틴 자켓 같은 경우 원래는 4계절 사용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는데 즉 추워지면 안에 다운 베스트나 다운 파카를 껴입으라고 되어 있다. 위 카탈로그 사진 정도로 옷을 입고 다니던 시절이라면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만약 마운틴 자켓을 몸에 잘 맞는 사이즈로 구입했다면 안에 자켓이고 베스트고 들어갈 리가 없다. 숨이나 막힌다. 즉 요즘의 사이즈 감으로 4계절 용도라면 봄~가을용 몸에 잘 맞는 자켓과 파카가 들어가고 몸에 잘 맞는 겨울용이 따로 필요해진다. 어쨌든 잉여의 옷이 생기므로 원래의 의도에 맞지 않다.




이런 건 옛날 옷 이야기니까 그렇구나 해도 요새 옷 사이에서의 문제도 있다.



이 옷은 노스페이스의 발트로 라이트 일본판. S 사이즈를 보면 어깨는 45cm, 가슴폭은 56cm 정도다. 겨울옷 치고는 살짝 슬림한 형태. 



이 옷은 마운틴 다운 재킷 일본판. 일본판을 예로 쓴 이유는 사이즈 별 실측 지수가 이렇게 나와있는 게 여기 밖에 없어서... 아무튼 S 사이즈의 경우 어깨 49cm, 가슴폭 59cm다.  이 옷은 상당히 큰데 M 사이즈에서 이미 가슴폭이 60cm를 넘어가 버린다. 사이즈 별로 2cm 정도씩 차이가 있는데 어깨, 가슴 양쪽 다 2사이즈 정도씩 차이가 난다.


둘다 다운 파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조금씩 다르다. 발트로 라이트는 겉감이 30데니아 윈드스토퍼, 커다른 플랩 등등 일단 바람을 막고 가만히 있을 때 추위를 막는 게 우선인 용도다. 눈이나 비가 살짝 내리는 정도에 대응할 수 있다. 마운틴 다운의 경우 겉감이 70데니아 고어텍스다. 눈비에는 훨씬 강하고 겉감도 탄탄하다. 


하지만 이게 두 제품의 사이즈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대체적으로 겉감이 튼튼하면 옷을 더 크게 만드는 경향이 이는데 그래야 움직임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하이벤트 겉감을 사용한 맥머도의 경우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무거웠었는데 그런 무거운 게 인기가 없어서 사라졌다가 몇 년 전 다시 발행할 때 사이즈를 좀 줄여서 나왔다. 발트로 라이트는 접어서 휴대할 수 있게 되어 있지만 마운틴 다운은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리고 고어텍스는 일단은 비옷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참고로 초창기에 맥머도를 그렇게 거대하게 만들었던 이유는 또 있다.



보다시피 옷 안쪽에 지갑, 전화기를 비롯해 500ml 물병 전용 케이스, 전자기기 케이스 등등 온 살림을 다 집어 넣을 수 있게 해놨다. 바깥쪽 주머니도 거대하다. 즉 가방과의 통합을 노리고 있던 게 아닐까 싶다. 날도 추운데 그냥 옷에 다 넣고 다녀라!


아무튼 이런 경우 발트로 라이트 S가 맞는 사람의 경우 마운틴 다운을 구입하려면 뭘 입을지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일단 실측을 보면 XS를 입는 게 맞고 그것도 살짝 크다. 하지만 신체와 의도를 생각하면 역시 S를 선택하는 게 맞다. 크지만 원래 큰 옷이다. 이 둘을 놓고 성향이 갈린다. 갑자기 귀찮아졌는데 나 같은 사람은 S를 선택할 거라는 이야기. 물론 XS를 선택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라는 이야기.



그래서 원래 큰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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