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의 즐거움2018.10.12 12:38

이런 부분은 은근히 까다로운 데가 있는데 예를 들어 옷을 펼쳐 놓을 적당한 장소, 항상 일정한 광량, 접근의 편리함 등등이 필요하다. 사실 옷 말고 강아지 웅군이라든가도 일정 간격으로 사진을 찍어 놓고 싶은데 말 그대로 중구난방이다.


아무튼 그런 데가 딱히 없어서 여기저기 돌아다녀도 보고 했지만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그냥 가끔 생각나면 사진 몇 장 찍어보고 내버려 두고 있었다. 이게 귀찮기도 하고, 왜 하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또 종종 얼마나 색이 변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하지만 체계적인 아카이빙에 그다지 흥미도 없고 등등이 부딪치고 있는데 어제 문득 생각난 김에 적당한 장소를 마련하고 찍어보았다. 앞으로는 생각날 때마다 찍어놓자...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또 어찌될 지 모르지.



어쨌든 M41300. 그냥 M41300과 뭐가 다른 지 잘 모르겠지만 정확한 라벨 명은 M41300A다. 얘네들 보면 가끔 A, B, C, D가 뒤에 붙어 있는 것들이 있다. 이 옷은 2017년 7월에 찍어서 여기에 올린 적이 있다(링크).



그때는 바닥에 펼쳐 놓고 찍었었음. 


보다시피 청바지 생애 중 가장 지리하고 재미없는 기간을 지나고 있다. 사실 전 주기에서 보자면 한창 때의 모습인데 청바지 같은 옷은 아예 파랗거나 아예 바랬거나 한 게 인기가 많다. 그 중간의 1년 3개월 정도의 텀은 위 사진에서 보듯 눈에 확 들어오진 않지만 확실하고 분명하게 늙어가고 있다. 


간단히 이 옷을 소개해 보자면 슈가 케인이 M으로 시작하는 옷을 내놓을 때인 90년대 옷이다(요새는 SC). 501 XX 타입을 표방한 오리지널 디자인. 전반적으로 굵은 다리통을 자랑하고 완연한 스트레이트 핏이다. 스트레이트가 좋다가 테이퍼드가 좋다가 그러는데 요새는 테이퍼드가 조금 더 재밌음. 주머니 마다 안에 코튼 헤링본 천을 하나씩 덧대놓은 게 가장 큰 특징이다. 그렇찮아도 빳빳 딱딱한 데님인데 천까지 붙어 있어서 더 빳빳 딱딱하다. 이 옷을 디자인한 사람이 청바지의 빳빳함에 꽤나 몰두해 있을 때 만든 게 아닐까 싶다. 질감도 촉감도 부드러움이나 착용감 따위는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또한 주머니 입구 부분들이 꽤 낡아가고 있는데 자가 수선을 할 수가 없다. 바늘이 들어가지 않는다.


너무 자주 세탁하기 때문에 청바지 경년변화의 샘플 예 같은 모습은 전혀 나오지 않고 그냥 청색이 빠지며 낡아가고 있다. 위 사진에서는 잘 안보이지만 탈색 과정에서 세로 선이 비오듯 생기는 것도 특징이다.



암만 쳐다봐도 왜 저런 식으로 물이 빠지는 건지 잘 모르겠다... 다음 번에 에비수 2000을 올릴 건데 그쪽은 전혀 저런 현상이 없다.


갑옷처럼 딱딱한 이 옷도 보니까 후줄근하게 낡아가고 있어서 어딘가 서글프다. 노화를 기록하는 일이란 원래 그렇다. 그래도 지금 템포면 몇 년은 더 입게 될 거 같다. 


하지만 위 사진에서도 살짝 보이듯 문제가 몇 가지 있는데 엉덩이와 가랑이 부분의 집중 노화(맨날 앉아 있으니까)다. 딱딱하고 천까지 덧대놨지만 대신 그 주변부에 압력이 많이 가는 문제도 있다. 마냥 두껍게 한다고 옷이 튼튼해지는 건 아니다. 그걸 깨닫지 못했던 시절에 만든 옷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옷이 끝나면 같은 회사에서 최근 내놓고 있는 비슷한 풍의 1947을 입어보면서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알아보고 싶다. 


내년 쯤 이 옷을 다시 올릴 때를 기약하며 오늘은 이만.




Posted by macro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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