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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2019 SS, 옷에 인간을 가둬놓는 방식에 대해서

by macrostar 2018.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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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웨이를 걸으면서 옷에 인간을 가둬놓는 사람들이 있다. 또 럭셔리를 풍자하거나, 아이러니를 붙잡아 올리기도 한다. 이것들은 다들 조금씩 다르지만 비인간을 지향하고 인간이 하고 있는 일을 우습게 보면서 동시에 그런 태도를 럭셔리로 판매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뎀나의 발렌시아가는 계속 럭셔리, 하이 패션 그 자체를 조롱과 과장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그런 태도를 하이 패션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비싼 걸 놀리는 비싼 거라는 모순은 비교 우위를 확보하는 듯 하지만 결국은 자신을 조롱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최선의 유머이기도 하고 최악의 유머이기도 하다. 


이건 붕괴를 앞당길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예전에 쓴 적 있지만(링크) 무너짐을 이용해 찰나의 순간에도 돈을 번다는 점은 굉장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거고, 이 말은 기존 체계가 붕괴되도 잘 살 방법은 또 있기 마련이지 라는 암시를 준다는 점에서 낙천적이고 낙관적이고 긍정적이기도 하다. 오늘은 오늘 팔 방법이 있기 마련이고 내일 팔 방법은 내일 만들면 되는 거다. 망하는 걸 걱정하는 건 그걸 못하는 사람들이나 한다.


오랜 시간 극한 마이 웨이를 걷고 있는 릭 오웬스는 인간을 좋아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 잘 모르겠는 스탠스를 꾸준히 잘 유지하고 있다. 가는 길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이 정도로 꾸준하고 묵묵하게 가고 있다면 이미 그걸로 된 게 아닐까. 발렌시아가와 다르게 일부러 티내며 놀리는 거 같지도 않고 게다가 빈정대고 있지도 않다는 점이 릭 오웬스의 가장 놀라운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톰 브라운은 하나하나 꺼내 놓으면 다 멋지고 예쁜데 합쳐 놓으면 뭐하는 지 잘 모르겠다는 점에서 릭 오웬스와 비슷하고, 럭셔리와 하이 패션 그 자체를 놀리고 있다는 점에서 발렌시아가와 비슷하다. 소비를 우습게 놀릴려다가 인간까지 놀리게 된 건 의도일까 의도를 넘어선 걸까. 아무튼 이 분은 꽤 오랫동안 옷에 사람을 열심히 가두고 있는데 그 상자가 점점 작고 불편해지고 있다. 


조만간 사람을 아예 빼버리고 네모 상자를 내놓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지만 생각해 보면 움직일 수 있는 걸 못 움직이게 하는 것과 원래 못 움직이는 건 상당히 다른 일이다. 게다가 구두를 신고 있어야 하고 가방을 들고 있어야 한다. 


톰 브라운이 대체 왜 사람을 가두고 있는지 사실 그걸 모르겠는데(포박 결속 페티시에서 나온 건지, 아니면 더 고차원적인 뭔가가 있는 건지 혹은 어쩌다 시작한 게 괜찮은 거 같아 여기까지 온 건지) 아무튼 이 분은 그 길을 묵묵히 가고 있다. 릭 오웬스와 다른 점을 들자면 상당히 기분 나쁜 방식으로 이 길에 접근하고 있다. 릭 오웬스라고 밝고 즐거운 건 아니지만 이쪽은 확실히 더 거슬리는 구석이 있다. 아무튼 톰 브라운의 패션은 인간,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을 꽤나 싫어하는 거 같다. 그걸 뛰어 넘어야 멋진거야, 그런 것도 받아들일 수 있는 멋짐 등등이라는 권유 혹은 빈정댐은 과연 얼마나 더 유효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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