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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맥퀸을 보다

by macrostar 2018.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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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맥퀸을 봤어요. 왠지 이렇게 시작해야 할 거 같군요. 어쩌다가 시사회 초대를 받아서 갔는데 10월 중 개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다큐멘터리에요. 패션에 관심이 있다면, 광기에 휩싸인 막무가내의 인간에 관심이 있다면, 요절한 천재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면 재미있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행동, 하는 짓, 그리고 인생 그 자체가 다큐멘터리에 매우 적합한 사람이긴 합니다. 


맥퀸이 2010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따지고 보면 10년이 지나지 않았죠. 하지만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흐릿한 예전 비디오 녹화 영상들처럼 꽤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8년 사이에 참 많은 게 변했습니다. 사실 영화에 모르는 내용은 거의 없었어요. 글과 사진으로 봤던 걸 영상으로 보는 정도. 



다만 실업 급여를 꽤 오랫동안 받았다는 건 몰랐습니다. 초창기 고생할 때 정도 이야기인줄 알았어요. 미디어가 몰려오고 사람들이 환호를 지르는 화려한 맥퀸의 쇼가 끝나고 나면 맥도날드에서 저녁 먹을 돈도 없었다죠. 예전에 벨 앤 세바스찬이 실업 급여 덕분에 만들어졌다는 인터뷰를 보고 감탄(?)을 한 적이 있는데 대체 영국인들에게 실업 급여란 뭘까요. 왜 실업 급여로 용되는 이야기는 영국 외의 나라에서는 거의 들리지 않는 걸까요. 그런 게 조금 궁금해졌습니다.


얼굴이 나오면 일을 하고 있다는 증명이 되버려서 실업 급여가 끊기기 때문에 이렇게 인터뷰를 했었다고. 이 말은 영국의 실업 급여 심사가 꽤나 엉망이어서 많은 젊은이들이 그 틈을 이용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하이 패션신에는 주기적으로 쇼크가 찾아옵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굉장하다!" 이런 것. 하이 패션은 특히 멋지다 보다 놀랍다 쪽이 확실히 더 가치가 있습니다. 놀랍다보다 "헐-" 쪽이 최상위입니다. 어차피 옷이에요. 광기에 휩싸인 천재가 건물이나 자동차, 구조물 뭐 그런 걸 만들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을 겁니다. 옷은 그래봐야 어디 찔리거나 긁히는 정도죠. 매우 자극적이지만 혁명을 일으키지도 않고 전쟁을 일으키지도 않아요. 그래서 들여다 보는 입장에서 마음이 좀 가벼운 면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예전 이야기 하는 걸 별로 탐탁게 생각하지 않지만 잠깐 쓸 예정이라 이 부분은 지워질 가능성이 있는데 예컨대 전 마르지엘라의 쇼크를 실시간으로 겪은 세대는 아닙니다. 나중에 알게되었고 돌아봤죠. 레이 카와쿠보, 요지 야마모토 등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헬무트 랑 정도 부터가 실시간이었습니다. 정말 "헐-"이었죠. 요란하지 않게 충격을 만들어 내는 건 확실히 머리 속에서 오래 갑니다. 


갈리아노는 놀랍진 않았어요. 왠지 그냥 저런 사람... 웃긴다... 정도. 후세인 살라얀이나 크리스토프 드카르냉 같은 사람도 있었죠. 하지만 너무 짧았죠. 뿜어내더니 식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맥퀸입니다. 뿜어내더니 세상을 떠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 길었죠. 하지만 지방시 컬렉션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줄리앙 맥도날드에 비하자면 훨씬 재밌었긴 하지만요. 그 다음은 누구일까요. 알레산드로 미켈레나 뎀나 바잘리아 정도일까. 고샤가 좋은 자리를 차지하면 재밌는 걸 선보일 거 같은데 회사들이 보기엔 아직 아닌가 봐요. 그리고 뜬금없지만 2017년 쯤부터 언더커버가 이제와서, 난데 없이 왜 저러지 싶을 정도로 흥미진진하기도 합니다.  


맥퀸은 시스템 적인 측면에서 보면 과도기적인 사람입니다. 유력 디자이너들이 예전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게 되었지만 시스템은 갖춰져 있지 않았죠. 지방시의 RTW와 오트쿠튀르 그리고 맥퀸과 맥큐 등등 시즌 컬렉션이 너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떻게 보자면 변명이에요. 칼 라거펠트는 요새도 샤넬, 펜디, 칼 라거펠트를 하고 있죠. 버질 아블로도 1년에 루이 비통 2시즌과 오프 화이트 2시즌, 그리고 많은 콜라보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 천지에요. 즉 맥퀸은 이런 류의 압박에 맞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시스템이든 그 사람이든 할 수 있는 일보다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었던 건 분명합니다.


그리고 패션의 흐름의 측면에서 봐도 과도기적인 사람입니다. 점점 고도화되었고 이윽고 정말 미친 듯한 사람 한 두명 정도는 수용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 맥퀸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텀에서부터는 모든 게 변해버렸습니다. 이제 이런 건 매우 매끄럽게 처리됩니다. 이렇게 날것의 느낌이 나는 식으로 캣워크 위에 들이 밀기는 이제는 힘들어요. 또한 광기를 비롯해 노출, 예술혼, 삐툴어지고 왜곡된 인간상 이런 식의 접근이 높은 평가를 받던 시대도 지났습니다. 그런 건 아무 것도 없을 때나 의미가 있죠. 


즉 맥퀸을 기점으로 보면 하이 패션이라는 산업의 전과 후의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티시, 미켈레, 바잘리아, 고샤 다들 능수능란하죠. 물론 그들이 받고 있는 압박의 크기야 저 같은 사람으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겠습니다만. 양쪽을 다 거치면서 최상위 티어에 여전히 살아남아 있는 라프 시몬스 같은 사람도 대단하고요. 맥퀸의 이야기는 아마도 그래서 더욱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거겠죠. 



아무튼 이런 식의 디자이너가 메이저에서 활동하는 모습은 뭔가 새로운 변화가 오기 전까지는 당분간 보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나름 재미있었어요. 사실 맥퀸이라니... 좋긴 했지만... 하면서 극장에 간 게 사실이긴 합니다만 여기저기서 너무 재밌게 보이는 일이 계속 튀어나오고 대체 이 사람들 뭘 하고 있는걸까 궁금해서 뭐라도 힌트를 찾으려고 열심히 뒤적거리며 (옷을 만드는 사람도 아닌 주제에) 매일 패션 생각만 하던 때가 생각나기도 하고요. 뭐 그런 시대였죠. 이제는 다들 손털고 그런 과거는 마음에 묻고 미래를 향해 가는거죠.


기회가 된다면 맥퀸 꼭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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