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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관계의 유지

by macrostar 2017.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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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멋대로 입자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는데(링크) 그 이야기에는 착장에 반영되어 있는 경제적, 환경적, 사회적 취향 등의 이유가 좀 짙게 깔려 있었다. 하지만 그것 외에도 인간의 욕망이란 타인의 욕망이란 결코 종잡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런 건 이해의 대상조차 아니고 아주 빈번하게 완전히 비합리적이다. 


물론 거대한 통계로 잡히고 가시적인 움직임이 있을 경우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지점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그게 개개인으로 치환되고 나면 그런 설명은 별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므로 사회적 현상에 대해 난 안 그런데? 같은 의문은 별로 의미가 없다. 마찬가지로 개인의 호불호를 사회적 대의에 연결시키려는 서툰 시도들도 대부분 별 의미가 없다.


타인의 욕망은 통제나 이해가 가능한 대상이 아니다. 다만 그게 범죄이거나 아직 범죄로 지정되진 않았지만 사회적으로 범죄에 준하는 행위임이 분명할 때(인간의 비이성적 행위의 영역은 현대 사회에 들어오면서 상당히 빠른 속도로 넓어지고 있는 거 같다) 억제하는 훈련 정도가 사회인으로 살기 위한 요건일 뿐이다. 제대로 된 사회적 인간이라면 괴상한 발상이 떠오른다 해도 완전히 내재화시키고 완전히 억제할 수 있어야 한다. 페도파일처럼 생각이 밖으로 나온다면(이미 통제가 안되고 있다는 의미고 게다가 그 대상은 저항이 불가능하다) 당장 감옥으로 보내는 게 맞다.



여하튼 작게는 함께 옷을 사러 갔는데 대체 이해할 수 없는 것만 고르는 것부터 시작해서 드레스 업이나 어글리 프리티, 그리고 더 나아가 SM, 페티시, 키구르미와 퓨리 팬덤 또한 막상 마주치기 전에는 쉽사리 상상할 수 없는 어떤 것까지 그 영역은 매우 넓고 깊고 다양하다. 혹시 친구가 될 순 없다고 해도 그게 사회에서 배제되어야 하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타인의 취향과 착장이 가진 이유란 결과적으로 보자면 거의 자연 현상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게 비난의 대상인가에서 문제는 좀 복잡해 지지만 문제는 그게 선택이 가능한 것이었나로 환원되기 마련이다. 예컨대 자기가 싫어서 롱 패딩을 안 입는 것과 억지로 롱 패딩을 못 입게 해서 안 입고 있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인간의 가장 평범한 한심함은 보통 자기가 싫다고 못 입게 하는 걸 찬성하는 식으로 나온다. 아무튼 란제리를 입든 말든, 낡은 티셔츠만 입든 말든 그건 그 사람의 문제고 그 사람의 선택이다. 그것으로 뭘 얻으려 하는가 혹은 뭘 주장하려 하는 가도 역시 기본적으로 그 사람의 문제다. 하지만 물론 그런 행위가 좀 더 크게 써먹을 때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면 써먹는 게 서로 좋은 경우가 많을 거다.


여튼 결론은 타인의 특히 성인의 착장에 대한 욕망과 실현을 과소 평가해서는 안된다.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뭘 향해 가려고 저런 옷을 입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부분에 있어서 자신의 취향 같은 건 별로 쓸모가 없다. 그러므로 기본적인 태도는 뭘 보든 뇌 속을 스루해 지나쳐 버리거나 그게 아니라면 그것도 괜찮군 이라고 혼자 생각하는 것 정도가 아닐까 싶다. 혹시 사회적 관계의 유지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그런 건 알아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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