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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즐거움

다 쓴 향수 이야기, Rochas의 Macassar

by macrostar 2017.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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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짜리 연휴의 마지막 날이다. 다행히도 연휴 내내 일을 할 수 있었는데 그런 게 물론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날씨가 꽤 좋았기 때문에 뭔가 좀 아쉽기도 하고 그렇다. 그런 김에 향수 이야기나 한 번.


향수 이야기는 모르는 향수와 다 쓴 향수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된다. 모르는 향수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가 적혀 있는 걸 읽으면서 어떤 걸까 생각하는 게 좀 재밌고, 다 쓰고 나서 이제 아듀를 고하며 뭔가 써보는 것도 재미있는 거 같다. 보통 한 두가지를 몇 병씩 꽤 오래 쓰는 편이고 전환기가 필요할 때 향수를 바꾸고는 한다. 여기 더해서 서브로 몇 가지 운용하는 식이다. 사는 게 좀 재미없는 거 같을 땐 옷을 사는 것보다 향을 바꾸는 게 확실히 영향력이 크다.


그리고 어디 다른 곳에서 몇 번 이야기 한 적 있는데 특히 향수는 완전 램덤을 좋아한다. 향을 알고 사면 선택지가 보통 빤해진다. 적어도 완성도에 있어 염려가 되는 수준만 넘어서는 거라면 어쩌다 주어진 걸 쓰는 게 재밌다. 보통은 내가 돈주고 살 리가 없는 완전 이상한 게 걸리기 마련이고 그런 걸 쭉 쓰다 보면 또 재미가 있다. 그런 걸 몇 번 더 구입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하는 로샤스의 마카사르는 단종되었기 때문에 아마 살 수가 없을 거 같다. 이미 다 써버린 지도 꽤 지난 향수다.



원래 광고와 병 모양은 이렇게 생겼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건 길쭉한 네모 병이었다. 어머니 친구분이 남자 향수라며 주셨는데 왠지 비매품이었다. 여행사를 운영하며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시는 분이라 어디서 어떤 경로로 구한 건지 나로서는 짐작할 수가 없다. 하여간 처음 받고 뿌려봤더니 올드 스파이스 풍의 정말 진한 스킨향이 진동을 해서 난감했는데 계속 쓰다 보니까 위에서 말했듯 역시 재밌어 졌다. 나랑 전혀 어울리지 않고 만약 돈 들고 사러갔다면 이런 건 뚜껑을 여는 순간 그냥 닫아버렸을 향이다. 바로 그게 마음에 들었다.


유래니 노트니 이런 거 전혀 모르고 사용했는데 지금 찾아보니까 마카사르는 인도네시아의 도시 이름이고 나무 이름이라고 한다. 저 광고와는 뭔가 안 맞는 거 같은데 그런 거야 로샤스 맘이고. 만든 사람은 니콜라스 마무나스와 로저 펠레그리노. 니콜라스 마무나스는 로샤스의 향수를 메인으로 만든 분이고 로저 펠레그리노는 알만 한 제품으로는 Armani Eau Pour Homme가 있다. 이 향수는 레몬이랑 베르가못 향 많이 나는 건데 어렸을 때 쓴 적이 있다. 향은 나쁘지 않은데 왠지 귤이 되는 기분이 들어서 한 통 써보고 말았었다.


마카사르의 노트를 찾아보니까

탑 - 로렐, 웜우드, 아르테미시아, 프루잇, 베르가못 

미들 - 토바코 플라워, 제라늄, 카네이션, 파츌리, 베티버

베이스 - 샌달 우드, 세다 우드, 오크모스, 과이액 우드, 마카사르 우드, 머스크, 앰버그리스


이렇게 되어 있다. 근데 오래된 향수라 그런지 노트에 대해 몇 가지 이설이 있고 1980년 초기 판과 2004년에 나온 후기 판이 다르다고 한다. 초기판 노트는 좀 더 마니악한 느낌인데 카스토리움이라는 게 들어있어서 찾아봤더니 비버(댐 짓는 그 비버) 항문 근처 낭에서 뽑은 향이고 가죽 향 낼때 많이 쓴다고 한다. 


이 향수는 그냥 간단히 말하자면 나무 냄새, 동물 냄새 사이로 멀리 꽃 향기가 나는 콘셉트 비스무리한 느낌이다. 그리고 아무튼 찐하다. 음침한 숲 속에서 커다랗고 습기찬 나무의 시큼한 냄새를 킁킁 맡는 순간을 극대화 하면 이런 향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상당히 개성이 강한데 조 말론 등 요새 니치 향수의 삐툴어진 마음과는 좀 다른 정통 노선이다. 올드 스쿨 풍이라는 거다.


어쨌든 진득진득한 향의 매력이 뭔지 이 향수 덕분에 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재발행이 된다면 한 번은 다시 살 거 같다. 하지만 혹시나 로샤스가 그럴 마음이 있다면 물론 1980년 판이 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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