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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즐거움

브랜드 안에서의 균형

by macrostar 2017.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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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을 궤뚫어 보고 빈 자리를 찾아 포지셔닝을 하는 게 이상적이겠지만 사실 이런 건 불가능하고 해도 아주 큰 규모의 기업이나 가능한 일이다. 규모가 작아질 수록 포지셔닝을 잡는 건 아무래도 운이 작용하는 일이다. 즉 내가 좋아하는 게 세상이 좋아하는 시절이라면 운이 좋은 거고, 그렇지 않다면 아무래도 사이즈를 키울 뾰족한 수가 나기는 어렵다. 묵묵히 해 가다가 또 세상이 좋아하는 시절이 찾아오면 그 역시 운이 좋은 거고... 뭐 이런 식이 아닐까. 


다른 일도 그렇겠지만 못 하는 걸 극복하느니 잘 하는 걸 더 잘하기 위해 애쓰는 게 아무래도 승산이 있다. 어차피 모두가 "좋아하는 것" 같은 건 만들 수가 없는 법이고 그러니 이런 걸 좋아한다면 역시 저기 쪽이 낫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서브 브랜드, 콜라보 같은 건 상당히 중요한 기능을 한다. 물론 상업적인 목적이 가장 크겠지만 콜라보의 존재는 본진의 폭을 좁히는 대신 더 깊게 파고들 게 만들어 줄 수 있다. 프라다와 미우미우, 돌체 앤 가바나와 D&G 그리고 J.W 앤더슨이 탑샵이나 유니클로와 하는 콜라보, 루이 비통과 슈프림 NY의 콜라보 다 그렇다.


레플리카 브랜드 이야기를 해보자면 레플리카라는 게 기본적으로 옛 방식, 꾸밈이 없는 베이직한 아이템 같은 걸 중심에 두다보니 패션 적어도 꾸밈의 측면에서 보자면 그다지 재미가 없다.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만듦새와 스토리에 더 끌리기 때문에 구찌에서 내놓는 셀비지 데님이래 봐야 일본산 셀비지 데님 가져다 별 쓸데없는 군더더기만 많고 엄청 비싸기까지 한 바지, 패션의 세계는 역시 이해 불가... 로 가기 쉽다. 물론 어디서 구한다면 구찌 데님 페이딩 다이어리 같은 걸 누군가 쓸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일은 거의 없다. A.P.C나 ACNE 스튜디오 정도가 아슬아슬하게 그 사이에 걸쳐 있을 거 같다.


위 사진처럼 생긴 5포켓, 금속 버튼, 구리 리벳, 스트레이트, 가죽 패치 등 그냥 베이직한 모습이 아무래도 가장 인기가 좋고 그렇기 때문에 타이트, 슬림, 레귤러, 테이퍼드 같은 미묘한 차이들이 더 크게 느껴진다.


어쨌든 이런 브랜드들에도 역시 이상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 아무래도 바닥이 이런 바닥이다 보니 약간 마니아틱한 성격을 지니게 된다. 브랜드들도 그 정도는 커버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런 라인을 서브 브랜드, 콜라보 등의 방식으로 내놓는다. 이렇게 되면 본진의 브랜드들은 딱히 특별한 장난을 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베이직한 라인의 굳건함을 더욱 굳힐 수 있다. 뭐 길게 썼는데 그런 브랜드들 몇 가지 이야기다.


웨어하우스는 네푸타(neputa)라는 시리즈를 꽤 오랫동안 내놓고 있다(링크). 원래 시즈오카인가에 있는 Wanderer라는 샵과 만들었던 별주 모델인데 원더러가 없어진 지금도(지금은 브레이브 리라는 이름이다) 네푸타라는 이름으로 계속 나온다. 네푸타는 일본 동쪽 지방 여기저기에서 열리는 농사와 관련된 여름 축제 중 하나로 더위와 수마를 물리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웨어하우스에서는 이거야 말로 노동자들의 축제! 프론티어 정신과 같지 않냐!는 식으로 (둘러대며) 이 시리즈를 내놓고 있다. 예전에는 좀 더 다양했는데 요새는 어느 정도 모양이 굳은 거 같다. 지금의 모습은 위 링크를 보면 알 수 있다.


1001XX 기반으로 핏 자체는 평범한 레플리카 청바지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백 포켓 스티치로 이상한 그림도 그리고... 사과, 해가 보이는데 요새는 탭이 아예 사과다. 위 사진들은 warehouse neputa 검색하면 나오는 것들.


가랑이 사이에는 이런 뜬금없는 보강재가 붙어 있다. 이 보강재는 별 거 아닌데 눈에 뚜렷하게 띄고 호불호를 나눈다.


그런가 하면 가랑이 사이는 저렇게 180도 벌어지게 설계되어 있다. 동그란 모습의 스티치는 페이크. 위 두 사진은 슈퍼데님 포럼(링크). 이런 식으로 상당히 쓸모없는 짓을 집약해 본 시리즈를 계속 내놓으면서 웨어 하우스 특유의 진중한 재미없음을 계속 유지 시킨다. 물론 더블 워크스(요새는 안 나오는 듯?)나 헬러스 카페 같은 게 또 있기도 하다.



슈가케인과 미스터 프리덤의 합작 컬렉션 역시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쪽 역시 근본은 별로 다를 게 없는 옷에 이상한 디테일을 잔뜩 넣는 작업을 통해 20세기 초반 미국 거지 혹은 부랑자 혹은 노동자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거지 같은 느낌의 옷은 슈가케인 특유의 면 50% + 사탕수수 50% 데님으로 만든 것들이 많은데 슈가케인 쪽의 시리즈가 뱀피 패치나 백포켓의 사시코 스티치 외에는 일단 평범하게 생겼는데 나중에 너저분하게 변해간다는 식이라면 이쪽은 너저분하고 거칠거칠한 분위기를 더욱 살리고 있다. 버튼 플라이도 그냥 넣으면 될 걸 꼭 뭐 하나라도 더 붙인다.



토요 엔터프라이즈(슈가케인, 버즈 릭슨, 선서프 다 같은 회사다)는 인디안 모터사이클이라는 브랜드도 있다.


프론티어 시대라면 카우보이와 인디언이지 라는 느낌을 한껏 살려 그런 모티브를 적극적으로 집어 넣고 있다. 이런 류 역시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기 때문에 안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전혀 접근하지 않지만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단연 이쪽이다. 모터사이클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지만 Schott나 부코가 선보이는 길과는 조금 다르다.



플랫헤드는 물론 백 포켓 스티치 같은 데 보면 뭔가 좀 과하다 싶은 생각이 좀 들긴 하지만(그런 이유로 플랫헤드, 페로우 같은 브랜드들은 나는 좀 힘들다) 여튼 한 발 정도 더 나아간 RJB 같은 브랜드를 따로 돌리고 있다.


RJB의 클리퍼스 데님. 인디언 모터사이클의 탑과 잘 어울릴 듯. 

좀 비어 보이는 곳을 절대 가만히 두지 않는다. 


위 사진 역시 슈퍼데님의 리뷰인데 RHT이긴 한데 가지런해 보이지가 않고 뭔가 특이하다. 주머니 같은 부분의 디테일도 조금 특이하다고 한다. 


어쨌든 어딘가 삐툴어진 욕구를 해소할 길이 있어야 본진도 더 충실해지고 삐툴어진 사람들의 사랑도 또 얻고 그러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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