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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와 치노

by macrostar 2013.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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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피케 (셔츠)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치노 (팬츠)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올리려고 하는데 제목을 그냥 피케라고만 하니까 너무 허술해 보여서 합쳤다. 여튼 여기서는 피케에 대한 이야기다.

폴로 셔츠에 대한 이야기를 몇번 한 적 있는데 대략의 역사에 대해선 다음 링크를 참조하면 좋겠다.
http://fashionboop.com/202

폴로 셔츠는 보통 면으로 만들지만 요즘은 기능성 웨어의 일환으로 운동용으로 만든 폴리에스테르로 된 얇은 폴로 셔츠도 나온다.

 
신축적이고 얇은 나일론으로 만든 H&M의 스포츠 웨어 폴로 셔츠



사진 뿐이니 소재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좀 더 패셔너블하게 보이기 위해 아마도 혼방으로 적절한 폴로 셔츠를 만들기도 한다. 위 사진은 지방시 2014 SS 남성복 패션쇼 중에서. Source - 스타일닷컴(링크).


하지만 이번 포스팅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100% 면으로 된 일반적인 폴로 셔츠다. 면이라고 해도 그 가공 방식에 따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다. 하나는 만져봤을 때 까칠까칠한 느낌이 나면서 약간 얇은 종류고 또 하나는 흔히 면티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부드러운 종류다.

다양한 폴로 티셔츠를 내놓는 곳이라면 어딜 가도 보통 이 두가지를 만날 수 있는데 아주 러프하게 나눴을 때 라코스테나 버버리는 전자에 가까운 게 많고, 폴로는 후자에 가까운 게 많다. 만져보면 그냥 알 수 있다.

면티에 가까운 폴로 티셔츠는 평범한 면티와 같은 방식으로 땀을 처리한다. 즉 살짝 흡수해 몸을 뽀송뽀송하게 유지해 준다. 하지만 몸이 온통 젖거나 하면 말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건 때로 곤란한 상황을 유발하는데 약간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한 여름에 땀을 온통 흘리며 = 폴로 티셔츠를 무겁게 만들며 산을 올라가다가 불안한 대기 상황으로 갑자기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젖은 수건을 감싸 놓은 맥주캔과 같은 꼴이 된다. 심하면 저체온증 증세로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평범한 환경이라면 원래의 상태를 더 잘 유지하며 뽀송뽀송한 면의 느낌으로 소프트한 편안함을 준다.

또 하나는 이번 포스팅의 주인공 피케다. Piqué라고 하고 Marcella라고도 한다. 면을 위빙 기법으로 꼬아서 만든다. 물론 꼭 면으로 해야 피케라고 하는 건 아니다. 위빙하면 보테가 베네타의 가죽 제품, 혹은 시원한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할아버지 구두들을 통해 많이 알려져 있다.


키톤의 피케 티셔츠



확대하면 이런 모습이다.


얼기설기 꼬여 있어서 스코치에서 나온 설거지용 수세미가 세제를 딱 붙잡아 더 많은 거품을 오래도록 내는 것과 같은 기능을 한다. 즉 땀이 나면 옷 전체가 순식간에 젖는다. 하지만 또 약간만 시간이 지나면 순식간에 마른다. 말하자면 맨 위에 나온 H&M 등에서 나오는 스포츠 웨어와 비슷한 기능을 면으로 발휘하는 거다. 면으로 된 주제에 이렇게 기능을 담고 있는 걸 사용하는 건 마치 장작을 태워 아이폰을 충전하는 거 같은 묘한 즐거움이 있다.

마르셀라 셔츠도 같은 위빙 코튼으로 만드는데 기능이 발휘되는 방식이 약간 다르다.

 
이런 격식차린 셔츠에서 마르셀라 위빙은 플레인 코튼의 셔츠에 비해 좀 더 많은 풀을 먹일 수 있어서 파티나 행사가 있는 시간 동안 더 오랫동안 빳빳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준다.



마르셀라 위빙은 원래는 마르세이유 지방에서 프로베칼 퀼트(Provençal quilts)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원단 제조 방식이었는데18세기 말 영국 랭커셔 지방의 원단 공장에서 방식을 들여와 발달하기 시작했다. 

 
Provençal quilts

여름에 입는 일상복으로서 피케는 땀을 금새 날려버린다는 점에서 좋지만 아무래도 뭔가 좀 조잡해 보인다는 느낌을 준다. 특히 더 팔랑거리기 때문에 마른 사람이 입으면 매우 후줄근 해 보인다. 사실 폴로 셔츠, 아니 티셔츠 자체가 몸이 튼튼하고 건강해 보이는 사람에게 더 잘 맞기 때문에 이게 딱히 피케의 잘못만은 아닌데 그렇다고 일부러 더 후줄근하게 보일 필요는 없다. 그래도 우리나라같은 찜통 더위에는 약간은 더 적합하다.



이외에 피케도 아니고 면티 같은 것도 아닌데 얇은데도 밀도감이 느껴지는, 무척 좋아보이는 면 폴로티도 있다. 폴로티가 스포츠 웨어에서 포멀 웨어로 흡수되면서 점잖기는 해야 하지만 너무 격식을 차리지는 않아도 되는 곳에서는 호환이 되는 분위기인데 그럴 때 알맞은 소재다. 보통 좋은 곳에서 나온다.

 
브리오니의 폴로 티셔츠.

출처가 명확하고 완벽 관리된 면으로 손바느질로 위빙을 해서 피케를 만들었든(그런 곳은 아마 없겠지만), 어디 알 수 없는 곳에서 가능한 저렴한 실로 기계가 펑펑 찍어내며 만들었든 피케는 피케다. 가격 차이는 두드러지고 위 브리오니처럼 흘낏 보고도 뭔데 저렇게 좋아보이지 하는 것들도 간혹 있지만(물론 그만한 댓가를 요구한다) 기본적인 폴로 티셔츠는 버버리나 유니클로나 사실 크게 다르진 않다.


마르세이유의 장인들과 랭커셔의 공장주들 덕분에 우리는 2013년 19,900원에 다양한 컬러의 폴로 티셔츠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너무 유니클로만 입으면 '좋은 면'의 밀도감과 '좋은 단추'의 촉감, 좋은 마무리의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릴 수 있으니 혹시 관심있다면 매 5번째 폴로 티셔츠는 좀 좋은 것으로... 정도의 리듬감 정도 가지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백퍼센트 면인데도 촘촘해 보이고 살짝 반짝거리기까지 하는 게 좋아보인다. 브리오니보다는 저렴한 걸 찾으려고 했었는데 찾아놓고 보니 이게 더 비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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