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2017.08.16 12:28

이번 주 패션 칼럼에서는 옷을 멋대로 입자, 남이 뭘 입든 뭐라 할 이유가 없다(링크)는 이야기를 썼다. 이건 거기서 연결 되는 이야기인데 스케일이 약간 더 크다. 그래서 물리적 분량의 한계가 분명한 위 칼럼에서는 조금 다루기가 어렵고 또 다른 기회 같은 게 있을 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여기에 일단 적어 놓는다.


우선 멋대로 입는 건 물론 좋은 일이다. 그리고 그런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서 적어도 맥락과 내용을 파악할 의무가 있다. 프린트나 상징 같은 것들은 이미 멋대로의 범위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멋대로는 제멋대로를 뜻하는 게 아니다.


또한 옷과 패션을 좋아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도 쓰고 있는 사람으로서 물론 옷과 패션에 관심을 가지면 재미있는 게 많다고 언제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렇게 관심을 가졌을 때 참고할 만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써 놓고 있다. 하지만 거기 까지다. 내가 우리집 강아지 웅이를 좋아하지만 웅이가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해도 둘 중 누구에게도 잘못 같은 건 없다. 그저 각자의 삶을 살 뿐이다. 아쉽지만 이 역시 거기 까지인 것과 마찬가지다.



여튼 다시 고프코어 이야기로 돌아간다.



1. 고프코어의 패션은 말한대로 멋대로 입는 거다. 파타고니아의 오버사이즈 플리스, 노스페이스의 바람 막이, 테바의 샌들과 흰색 면 양말 혹은 회색 울 양말. 기능과 편의, 필요에 따라 그냥 입는다. 이건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세계고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만들어지는 세계다. 그러므로 굳이 이런 걸 하이 패션에서 정밀하게 재구성해야 하는가, 이런 게 고급 패션이 제시하는 트렌드가 되어야 하는 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있다(링크). 


그런데 이렇게 입는 방식은 사실 중고등학교, 대학교 초년생 등등 할 일이 많고, 더 재미있는 게 많고, 옷 따위를 챙겨 입을 돈이면 산으로 들로 놀러다니는 게 더 재밌는 시절의 옷이다. 즉 어렸을 적 입던 방식을 사회적 의무에서 벗어나는 잠깐의 순간 다시 꺼내는 거다. 패션이라는 게 본격적으로 형성된 지 그리 긴 시간이 흐르진 않았지만 그간 사회적 관계나 위치, 책임과 의무 등의 이유로 받아들여지던 룰이다. 뎀나는 이런 걸 릴랙스라는 이름으로 다루면서 기존의 패션 생활을 무거운 "의무"로 환원 시키고, 나머지 시간에 자유로운 모습에 대해 이야기 한다. 즉 갖춰 입는 걸 일종의 피곤한 노동으로 취급하는 거다. 


물론 그런 구속을 피곤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현대 사회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위해 자연스럽게 몸에 익어야 하는 사회화 과정 중 하나다. 습관이라는 게 보통 그렇듯 조금만 훈련을 하면 이내 익숙해져서 무의식 중에도 쓱싹쓱싹 해결하게 된다. 어렸을 때 양치를 귀찮아 하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안 하면 잠도 안 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어차피 관심 없는 사람이야 할 수 없고 주변에 폐를 끼치는 경우만 제재하면 되는 데 이런 식이면 기본적인 훈련도 피곤한 의무로 만들어 버린다. 일단은 잠시라도 예전의 그 책임과 책무가 없던 시절로 돌아가겠다는 퇴행적 사고를 부추킨다. 이 범위는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2. 이런 식으로 바라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트렌드가 바로 낙서다. 마르지엘라의 낙서 스니커즈, 구찌의 낙서 티셔츠 등등 최근 뭐라뭐라 낙서를 갈긴 제품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프라다나 마리 카트란주처럼 뭔가 좀 열심히 그려놓은 것도 아니고 그냥 낙서다. 코코 카피탄은 구찌 티셔츠 위에 뭔가 그럴 듯해 보이는 낙서를 해 놓긴 했지만 사춘기 중 2병 스러운 아포리즘에서 딱히 멀리 간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이 두들링 패션, 스크리블 패션 역시 관광지 버스 정류장, 중고등학교 책상 위에서 볼 수 있는 낙서와 별로 다를 게 없다. 다를 게 없는 게 아니라 바로 그거다.





얼마 전 트위터에 올렸던 메종 마르지엘라의 새 스니커즈는 아예 흰색 스니커즈와 볼펜을 함께 준다. 이제 75만원 짜리 합성 피혁 스니커즈를 살 정도로 어른이 되었을테니 이걸 사가서 어렸을 때 했던 것처럼 시시덕거리며 멋대로 낙서를 해보라는 거다.



이 역시 고프코어의 후드와 플리스와 같은 방식으로 패션 같은 건 난 몰라 시절로 소비자를 유도하고 있다. 



3. 최근 패션의 80년대 90년대 노스탤지아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1900년대 초부터 70년대까지 전부 다 이런 저런 방식으로 회고를 했기 때문에 이제 남은 건 근 과거 밖에 없다는 이유도 있을 거다.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80, 90년대는 매우 애매한 과거다. 저런 옷을 살 수 있는 사람에게는 이미 거쳤던 과거고, 이제 처음 사보려고 하는 새로운 유입 세대에게는 자세히는 모르지만 TV와 인터넷을 통해 봤던 시대다. 거쳤던 사람에게는 이제 와서는 즐거운 일만 기억에 남길려고 하고 미디어를 통해 봤던 사람에게는 잘은 모르지만 즐거웠던 어떤 시절이다. 모든 갈등과 고난이 제거 되거나 화면 바깥에서 돌아가고 있던 응답하라 시리즈와 비슷하다.


어쨌든 이 근 과거의 복각은 1, 2와 마찬가지로 최근 패션 트렌드 특유의 퇴행을 부추키고 있다. 사실 지금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미래를 생각해 보면 깝깝하기 그지 없다. 다들 해왔던 대로 옷을 갖춰 입는 것도 피곤하고 귀찮다. 뭔가 구시대 적이라고 밀어 붙이면 될 거 같다. 결국 아 몰라...의 세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미래를 지향해야 했던 패션은 한통속이 되어 과거로 퇴행하려고 한다. 물론 트렌드란 제조업자의 책임 만은 아니다. 세상의 변화 분위기를 눈치 챈 민감한 반응이다. 그렇지만 거기에 힘을 싣고 속도와 깊이를 더 가속화 시키는 일을 하이 패션이 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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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cro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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