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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갭(GAP)과 레베카 베이

by macrostar 2014.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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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아이템을 충실하게 내주던 브랜드로 유니클로가 있다. 하지만 베이직만 가지고 성장에 아무래도 한계를 느꼈는지(그리고 미국 본격 진출 시기와 겹쳐) 유니클로는 나름 꽤나 "패셔너블"해지고 있다. 그 기점은 2010년 쯤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후 2011년 이 경향을 더욱 본격화시키며 야나이 타다시가 유니클로 이노베이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현재 브랜드의 총괄 디렉터는 다키자와 나오키(2007년까지 이세이 미야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고 이후 자신의 레이블 운영), UT 부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니고(Bathing Ape와 Bapesta를 만들었고 Billionaire Boys Club과 Ice Cream에도 관계하고 있다)다. 올해 컬렉션 전시 때는 니콜라 포미체티(디젤의 아트 디렉터, 니코판다)와 가모 가쓰야(헤어 디자이너) 등 일본의 내노라 하는 패션 종사자들이 참여했다.

덕분에 베이직으로써의 유니클로는 꽤 재미없어졌다. 요새 매장에 가보면 정상적인 치노 바지 하나 찾기 어렵다. 그러므로 다시 갭을 주목해 보게 된다. 물론 갭은 가격적인 면에서(특히 국내에서는) 좀 차이가 있다. 현재로서는 '유니클로보다 조금은 더 비싼' 정도 선으로 내려가지 않는 한 길이 없어 보인다. 뭐 이건 신세계에서 알아서 할 문제니 국내 문제는 여기서는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고.

갭의 문제는 첫번째로 SPA의 침공(H&M, Zara 그리고 유니클로 등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세일의 활용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다. 두번째는 드렉슬러가 쫓겨난 시점이다. 한때 화려했던 GAP의 모습을 만들어내다시피 한 드렉슬러는 2002년에 GAP의 창업자 도널드 피셔에 의해 해고 당했다(그는 이후 J CREW로 갔고 J CREW의 전성기를 만들어낸다 - 지금은 뭐 예전만 못한 듯 하고 팔린다는 소문도 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타이밍이 꽤 좋지 않았고 그렇다고 영특한 새로운 디렉터를 데려오지도 못했다. 이후 10년은 사실 좋지 못했고 마치 거대하고 매출도 계속 나오지만 그 누구도 희망을 가지지 않고 있던 노키아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애초에 그냥 있는 레일을 달릴 뿐 감각을 잃어버렸다.

어쨌든 2010년에 로고도 바꾸고(-_-) 절치부심하던 GAP은 결국 2012년 레베카 베이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데려왔다. 스웨덴 사람으로 H&M에 있으면서 COS를 만들었고 그곳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다. 브룬스 바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도 했었다. 여러가지 사정이 있었겠지만 COS를 만든 사람을 선택했다는 건 GAP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대충 알려준다. 베이직, 기존 SPA보다는 약간 더 좋은, 에센셜, 거대한 바닥을 다룰 수 있는 사람.

레베카 베이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면 : Silkeborg라는 덴마크 도시에서 아버지와 함께 자랐다. 아버지는 인물 사진을 찍는 사진 작가고 박물관 일도 했다. 학교 끝나면 아버지가 있는 박물관에 자주 놀러가던 딸은 예술사를 공부하기로 결정한다. 공부를 하면서도 조각과 드로잉을 워낙 좋아했었고 그러면서 제작과 바느질도 배우게 된다. 결국 좀 더 창조적인 일을 하기로 결심하고 1994년 디자인 스쿨에 진학했다. 하지만 처음 들어갈 때 목표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Forecaster였다고 한다.

졸업을 하고 나서 영국으로 건너가 볼보, 닛산, 던힐 같은 큰 기업에서 트렌드 포어캐스터로 8년간 일한다. 트렌드를 예측하고 전략 기획팀과 협력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그러다가 2006년 H&M에서 그를 스카웃했다. 거기서 중간 가격대의 하이 퀄러티 컬렉션을 기획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게 COS다. 그렇게 6년을 지내고 GAP으로 옮기며 처음으로 미국에서 일하게 된다. 유럽 출신이고, 유럽에서만 일하던, 그동안 미국과는 별로 인연도 없던 디자이너가, GAP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거다.


레베카 베이가 GAP에 와서 시작한 건 슈퍼 베이직으로의 컴백 그리고 이게 다가 아니라 새로운 스타팅 포인트를 잡는 것이라고 말한다. 진과 셔츠등 GAP의 오리지널한 제품들의 디테일을 다시 손보는 작업을 했는데 이는 마치 UT에 들어간 니고가 티셔츠 디자인을 새로 한 것과 비슷하게 보인다. 하던 걸 똑같이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80년대에 나온 옷과 2010년대에 80년대 레트로는 엄연히 다르다. 오히려 코어를 모아 더 80년대스러운 것도 만들어 낼 수 있다. 레베카 베이와 스타일 닷컴의 인터뷰는 여기(링크) 참고.

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도 아직은 그다지 전망이 밝아보이진 않는다. GAP이 비집고 들어갈 틈새가 그리 녹록치 않고 터잡을 포지셔닝도 애매하다. GAP 혼자 띵가띵가하던 호시절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렇지만 "아, 셔츠가 하나 있어야 되는데 백화점 같은 데 가면 뭔 그렇게 멋낸 것들만 있으니" -> 일 때 생각없이 유니클로로 향하는 발걸음이 멈칫해진 시점이다. 그럴 때 "맞다 GAP으로 가면 되지" 하는 데 까지 가는 건 아마도 여전히 가능할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 우리나라는 사정이 좀 다르다. 유니폼을 들고 와서 유니폼이 아닌 척 하려는 브랜드에는 어떤 자비도 필요없다. 안 가는 게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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