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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패션의 힘은 무엇인가

by macrostar 2024.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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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낸 책 패션의 시대(링크)에서 패션은 반사회, 혁명 그 자체가 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즉 패션에 현 사회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을 수는 있다. 그리고 그게 유행이 될 수 있다. 이런 경우 메시지의 힘은 약해진다. 그저 멋진 옷, 최신의 트렌드로 소비되기 때문이다. 최근의 가장 큰 이슈인 친환경, 페미니즘, 반 인종 주의 등이 이런 과정을 어느 정도는 거쳤다.

 

예전과 다른 점은 펑크 시대 반문명 패션, 그 이전의 여러 서브컬쳐는 은유적, 응용적인 면이 있었다. 밀리터리 패션은 스테디한 패션 트렌드로 완전히 자리를 잡아버렸지만 그런 걸 입었다고 반전을 읽어내는 경우는 이제 거의 없다. 최근의 경우에는 그냥 메시지다. 티셔츠 앞에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 놓는다. 이런 NGO의 방식이 과연 패션인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예능에서 동작이 아니라 캐릭터가 유행을 하고, 말하는 방식과 행동 방식을 따라하듯 패션에서도 옷의 종류가 아니라 사회적 태도 자체가 유행이 될 수 있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경우 많은 경우 진정성에 대한 의심을 받는다. 수많은 셀레브리티, 인플루언서가 친환경 메시지를 담은 옷을 입으며 그렇지 않은 삶을 사는 걸 보고 비판을 한다. 그런 이유로 친환경 옷이 무슨 소용인가하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런 옷을 입은 게 그렇지 않은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그리고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게 친환경 패션 트렌드가 만들어 낸 것 중 하나 아닌가 하는 이야기다. 적어도 그렇지 않은 옷을 입은 이들, 예컨대 모피, 에게 어느 정도 더 날 선 비판이 찾아오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꽤나 다양한 옷을 마음껏 입을 수 있는 상황에서 비롯된다. 몇 십 년 전이면 상당히 다른 이야기를 했을 거고, 권위주의나 독재의 나라에서는 여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된다.

 

 

북한에서 BBC 방송 Garden Secrets의 에피소드를 방송하고 있나보다. 그대로도 아니고 허가를 받은 건지 의심스러운데 한 시간 짜리 방송을 15분으로 편집하고, 출연자 알란 티치마쉬의 해설을 가리고 북한 내레이터가 설명하고, 사운드도 바꿨다고 한다. 그냥 화면의 모습만 사용한 거다. 가장 인상적인 건 위 화면에서 볼 수 있듯 청바지를 블러 처리하고 있다는 거다. 앗 청바지네 하며 이유를 생각하지 않고 반응하는 독재 정권의 기계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저렇게 가려져 있으면 더 궁금하고, 그냥 내비두는 게 청바지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기는 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청바지라는 건 자본주의의 대표적 해악을 취급하는 문화권에서 실제로 그 모습을 보게 하는 건 또한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긴 하겠다 싶기도 하다.

 

 

이분의 착장이 정말 흉악한 자본주의의 타락한 문화의 결과처럼 보이는가 하는 건 약간 다른 문제다.

 

아무튼 이런 경우 패션이란 극도로 통제된 사회가 그 통제를 유지하는 간당간당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것 역시 패션이 혁명 그 자체가 될 수는 없겠지만 상징이나 아이콘이 될 수는 있다는 거다. 어딘가 작은 균열이 가기 시작하면 통제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그쪽에서도 상징에 해당하는 패션은 일단 가리고 보는 방식을 채택하게 되고 저런 우스꽝스럽고 더 주목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런데 왜 플래드 셔츠는 가리지 않고 청바지는 가리는가. 플래드 셔츠는 북한 주민에게도 그렇게 멋지고 폼나는 자본주의 문화, 부르주아 문화 정도로 보이진 않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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