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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

유니클로 울 80%에서 울 30%까지

by macrostar 2017.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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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유니클로 이야기를 잠깐 하다가 생각난 김에 살짝 적어 본다, 제목은 유니클로 피코트 이야기다. 예전에는 울 80 / 폴리 20이었는데 울 50 / 나머지 50으로 바뀌었다가 작년에는 울 30 / 나머지 70이 되었다.





피코트의 울 함유율 변화는 나름 기본기에 충실했던 유니클로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뭐 따지고 보면 피코트의 기능성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어떤 울을 썼는지 얼마나 촘촘 튼튼하게 만들었는지 등등 여러 요소들이 있겠지만 여튼 울 80%라는 명목상의 기본기가 이제는 사라졌다. 다른 옷도 비슷한 경향이 있는데 물론 아직은 다른 브랜드의 옷에 비해 소재에 있어 나은 면이 남아 있지만(슈피마 코튼 100% 티셔츠 정가가 여전히 9900원이다) 분명 어느 지점에서 부터 충실했던 기본은 사라지고 있다. 


이런 변화에 대해 몇 가지 가정을 하고 있는데 하나는 미국 진출, 또 하나는 패스트 리테일링의 더 저렴한 브랜드 G.U의 존재다. 여기서는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생각되는 미국 진출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본다.


예전에 책에서도 말했다시피(링크) 유니클로는 야나이 타다시 회장이 사랑해 마지않던(이 분 뿐만 아니라 버블 세대 수많은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아메리칸 캐주얼에 기반을 하고 있고 비슷한 계열의 프로토타입이자 고급 옷이었던 VAN을 지오다노 비슷한 형태로 개편한 착탈식 스타일링으로 완성해 내는 데 성공했다. 


후리스, 히트텍 같은 옷의 대 히트가 있었고 그게 지금 유니클로 - 본진 패스트 리테일링을 본격적으로 몸집을 키워냈지만 기본적으로 별로 장난을 안 친 교과서에 나오는 듯한 디자인을 소재와 부자재 면에서 재현할 수 있는 건 재현하고 실현할 수 있는 건 실현해 내는 충실한 옷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런 예 중 하나가 예전에 나왔던 셀비지 데님이다. 퓨어 블루 재팬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초기에 나왔던 셀비지 청바지가 있다. 이건 사실 다른 데님 회사 퓨어 블루(PBJ = 쇼아이야)와 아무런 관계 없이 멋대로 이름을 써서 PBJ 쪽에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고(우리는 너무 작은 회사 ㅜㅜ 했던 글이 있었다), 심지어 요새는 이게 PBJ와 콜라보였다며 비싸게 파는 곳도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위 사진은 페이드 버전이군. 


여튼 이 바지는 카이하라에서 빈티지 셔틀 직조기로 만든 13온스 대 코튼 100% 데님 패브릭을 사용했고 위 사진에서 슬쩍 보이듯 허리 라인 상단 싱글 스티치 - 하단 체인 스티치, 밑단 체인 스티치, 아연 버튼에 구리 리벳, 11자형 버튼 덮개 바느질 등등 이상할 정도로 빈티지 청바지의 양식이 곳곳에 반영되어 있었다. 대신 버튼 버전은 없고 지퍼 플라이, 히든 리벳은 없고 바택 등등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 아닌 건 아끼는 식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주머니도 얇은 천이고 데님이 페이딩 되는 타입도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않는 등등 문제가 있지만 정가 4천엔인가 하는 저가형으로 만들되 기본기에 충실하고 있어야 하는 건 반드시 있는 유니클로의 방식을 보여준다.


이런 유니클로가 글로벌화되는 과정에서 미국 진출이라는 게 매우 중요할 거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본토에 가는 거고, 가장 큰 시장이기도 하다. 어떤 옷 브랜드도 그러하듯 어디에서 잘 팔린다고 해도 사실 미국에서의 성공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에 대한 대응이 연표로 보면 잘 나타난다. 


참고로 예전에 타다시 회장은 유니클로를 "품질은 높고, 완성도가 뛰어나고, 가격은 저렴한 국민 복이 되겠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패션성에 대한 경시가 드러난다 - 링크) 2006년 뉴욕에 플래그십 매장을 오픈 할 즈음 "고객 응대 중시, 패션 성 중시"라는 표현으로 유니폼이 되겠다는 한 때의 열망은 공식적으로 완전히 없앴다. 어쨌든 연표를 보자.




2005년 9월 뉴저지에 미국 첫 점포 오픈


2006년 11월 미국 뉴욕에 대형 플래그십 오픈


이후 7점포가 오픈함.



2013년 가을 미국에 10개의 점포를 오픈


2014년 미국에 8개 점포 더 오픈


현재의 미국 점포 현황은 여기(링크)에서 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보면 2005년~2012년까지 1차 오픈을 했고 / 2013년 이후 본격 진출을 하고 있다.


이걸 보면 처음 진출은 간보기 비슷한 거였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2013년을 중심으로 여러 변화가 있었고 그 이후 좀 더 본격적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하게 된다. 처음 진출하면서 "패션 성"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유니클로가 자체로 내놓는 데에선 별로 실현된 게 없었다. 다만 2007년 부터 디자이너와의 콜라보 컬렉션이 시작되었는데 그 이야기를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더 높다. 필립 림, 알렉산더 왕(2008년에 했다)이 나왔고 2009년에 나온 질 샌더와의 +J가 꽤 히트를 치게 된다. 


여튼 미국은 베이직 한 제품군에서 라이벌 들이 한 없이 많은 나라고 그러므로 그냥 가서는 승산이 별로 없다. 그 방법을 아마도 "패션"에서 찾으려 했던 거 같고 처음 진출 후 기존 제품을 중심으로 판매를 했고 이대로는 안되겠다 생각이 들었는지 콜라보가 아닌 본진의 디자인 문제를 본격적으로 손대기 시작했다. 


우선 2011년에 이세이 미야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하다가 2006년부터 자신의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던 타키자와 나오키를 디자인 디렉터로 데려온다. 유니클로라는 회사는 이전까지 디자인 디렉터라는 것도 없었던 회사다. 미국 매장 오픈을 해놓고 패션 성 이야기를 했지만 아마도 무슨 사정이 있었을테고 이즈음부터 보다 본격적으로 패션을 더하려는 시도를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2013년 Bape를 그만두고 나온 니고를 UT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데려온다. 또 2013년 니콜라 포미체티도 패션 디렉터로 데려온다. 


이렇게 네임드 급 디자이너 들을 각 분야에 적극 포진시키고 그런 컬렉션을 내놓으면서 2013년에 미국 진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디자인을 강화한다면 답은 하나 밖에 없다. 품질 저하다. 게다가 패셔너블함을 본격적으로 발휘할 수 없다는 - 컬렉션 브랜드가 아니다 - 기본적인 문제가 있다. 니고를 데려다가 12900원짜리 티셔츠를 만들라고 하면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거다. 


이후 라이프 웨어가 나오면서 이야기가 더 이상해 지는 데 목적은 매우 좋지만 편안함을 강조한다는 "핑계"로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같은 합성 섬유 함유율이 아주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피코트의 울 함유율이 낮아지면서 나올 수 있는 장점을 굳이 찾아본다면 울의 뻣뻣함이 덜한 좀 더 부드러운 옷이 된다는 거 정도 찾을 수 있을 거다. 셀비지 데님마저 혼방이 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스트레치!


결국 저렴한데 울과 면 비율이 높아서 나름 오래 입을 수 있고 기본이 탄탄했던 시절이 끝이 나고 미국 진출과 얽히며 디자인 중시, 편안함 중시로 방향을 본격적으로 틀면서 디자인으로 뭘 어떻게 해볼 만한 터가 아닌 한계 속에서 베이직도 아니고 패셔너블도 아닌, 그렇다고 기능성 측면에서도 애매한(설명 문구만 나날이 길어지고 복잡해지고 있다) 지점에서 이미지 강화만 계속 하며 달리게 된 게 아닌가... 하는 게 지금의 생각이다. 옷을 얇게 만들되 생긴 모습을 유지하는 기술력 하나는 여전히 최고일 뿐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피마 같은 면 티셔츠는 아직도 훌륭한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고, 할인 빈도를 생각하면 플란넬이나 옥스퍼드 셔츠 류나 치노 바지 쪽도 여전히 재미는 없지만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는 만한 옷을 내놓고 있다. 작년에 나왔던 워크 셔츠나 CPO 셔츠처럼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게 종종 나오기도 한다. 즉 구석구석 살펴보면 괜찮은 옷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가능성은 여전히 가장 높다. 하지만 과연 지금의 방향으로 원하는 대로 미국에서 성공하고 튼튼한 기본기를 다시 회복하면서 더 나은 브랜드로 레벨업을 할 수 있을지 그건 잘 모르겠다. 


일단은 가을에 나올 J.W 앤더슨과의 콜라보가 어떤 모습일지 기대를 하고 있는데 그게 만약 질 샌더 콜라보 만큼 잘 된다면 상황이 조금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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