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J.W. Anderson이 이끌게 된 VERSUS
macrostar
2013. 5. 17.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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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첫번째는 베르사체. 97년 이후 도나텔라가 만들고 있는 베르사체는 지아니 시절에 보여줬던 야생의/날것같은 현란함을 누그려트렸고 대신 보다 트렌디한 화려함을 앞에 내세우고 있다. 서브컬쳐의 조잡하고 어지러운 노선이 아닌 예전 스타일의 화려함은 여전히 베르사체가 최전방에 서 있다. VERSUS의 존재는 베르사체 본진의 옷들을 마켓의 여기저기 구석진 곳에 대한 관심을 줄일 수 있게 해주고 덕분에 보다 멀고 극단적인 곳으로도 치우칠 수 있게 해 준다.
두번째는 크리스토퍼 케인. 1978년에 베르사체를 런칭한 지아니는 1989년에 Rock-Chic 컨셉의 Versus를 뉴욕 컬렉션을 통해 선보인다. 지아니가 죽은 이후에도 컬렉션은 계속 만들어졌지만 2005 SS를 끝으로 중단된다. 세인트 마틴에 있던 시절부터 크리스토퍼 케인을 눈여겨 보던 도나텔라는 그에게 이런 저런 일을 맡기다가(그에게서 지아니의 젊은 시절을 봤다나 뭐라나) 2009년 캡슐 컬렉션으로 VERSUS를 내놓는다. 꽤 괜찮았고 곧바로 다음 시즌부터 재런칭된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VERSUS는 크리스토퍼 케인이 만들어갔고 둘에게 동시에 명성을 안겨준다. 크리스토퍼의 VERSUS하면 내 머리 속에 딱 이런 이미지가 떠오른다.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J.W 앤더슨이다. 1984년 북아일랜드 출신으로 한때 연기자를 꿈꾸다가 커스튬 디자인의 세계에 반해 London College of Fashion을 들어간 그는 학교 다닐 때도 Lufus Wainwright의 스타일리스트로 나름 이름을 얻고 있었다. 졸업하고 바로 자신의 레이블을 런칭했다. 최근들어 TopShop과의 컬래버레이션이 좋은 평을 받았고, 이번에 VERSUS를 맡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첫번째 컬렉션을 보게 된다면 체크할 것은 두 가지다. 여기에 VERSUS가 있는가, 그리고 J.W 앤더슨이 있는가. VERSUS의 전통답게 뉴욕에서 선보인 컬렉션은 타이밍도 좋았다. 마침 MET의 펑크 전시로 여러 패션 행사들이 잡혀있었고 사람들도 몰려온 시즌이다.
위 사진은 월페이퍼. 사이트(링크)에 가보면 나머지도 볼 수 있다.
여러가지 제한 조건들 사이의 균형점을 잘 잡았는데 쇼의 범위를 너무 넓히지 않았고, 덕분에 한 번에 한가지 이야기만 하는 문장을 보는 거 같은 경쾌함이 있다. VERSACE와 VERSUS의 아이덴터티에 손을 살짝 걸쳐놓으면서도, VERSUS이되 크리스토퍼의 그것이 아님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Not Ugly, A Sort of Kinky Bourgeois Women이라고 말했던 자신의 레이블과도 확실한 선을 보여줬다.
하우스에 입성한 또래의 디자이너들이 자주 보여주는 실수(인지 뭔지 가격대가 좀 더 높고, 매장에 좀 더 여러 곳에 있는 자신의 레이블이 하나 생겼나보다하고 말아버리는 - 이런 것들이 단기적인 매출 상승을 만들지 몰라도 결국에 가서는 하우스의 이름을 무의미하게 할 거라고 믿는다)를 꽤 좋은 감각으로 피해갔다. 라인의 폭이 너무 좁아 둔탁하게 주는 충격이 없는 게 아쉬운데, 이제 시작이고 그걸 뚫고 나가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일단 스타트는 좋아 보인다. 디퓨전 라인이라는 게 그런 점에서 더 나은 선택이 아닌가 싶다.
동갑내기(왕이 한 살 많던가?)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은 명문 디자이너 하우스를 맡게 되었는데 자기는 서브 레이블이라고 너무 슬퍼하지 말고 VERSUS에서 좋은 도약점을 만들어내기를 기대한다.
여하튼 언제나 생각하지만 디자이너는 서브 레이블이 있어야 된다. 가지고 있어서 자기가 직접 하고 있든지, 서브는 남에게 맞기든지, 아니면 자기가 서브를 맡고 있든지 상관없다. 일단 그게 있어야 자신의 메인 컬렉션에서 보다 마음껏 밀어붙이며 더 깊은 세계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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