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을 위한 예술, 예술을 위한 패션
최근 몇 년 패션과 예술 사이를 오고가는 몇 가지 작업들을 이것저것 보고 난 후 머리 속에서 파편화되어 있던 여러 생각들을 약간 더 차분히 훑어보기 위해 여기에 간단히 정리해 본다. 어디까지나 생각을 더 전개해 보기 위한 기반에 대한 생각이기 때문에 기반이 흔들릴 수도 있고, 여기서 다른 곳으로 나아갈 수도 있겠다.
예전에 어딘가에다 썼었는데 패션과 예술은 무엇을 만든 다음 어딘가 늘어놓는다라는 같은 과정을 가지고 있다. 물론 만드는 목적이나 그 결과물의 용도 같은 건 다를 지 몰라도 물리적인 무엇인가를 만들어 전시장 혹은 매장에 늘어놓고 사람들이 그것을 보는 과정은 같다. 그러므로 이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뭔가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자연스럽다. 이 접근을 양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패션을 위한 예술. 패션, 결국은 옷을 만들기 위해 예술의 방법을 이용하는 경우다. 이것도 러프하게 둘로 나눠볼 수 있을텐데 공예적 방법을 이용하는 것과 보다 개념적 예술 작업 방식을 이용하는 경우라 하겠다.

- 공예적 방법을 이용하는 경우는 CCP나 ERD 등 아티잔 디자이너 브랜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뭔가를 정교하게 깎고 다듬어 조형물을 만들 듯이 접근해 옷을 만든다.
- 개념적 예술 작업의 방식을 이용하는 경우는 뭐가 있을까... 기존의 옷을 해체한 후 다시 조립했던 마르지엘라나 의복을 신체를 둘러싼 형태, 공간, 기술의 결합체로 다루며 접근했던 후세인 살라얀 같은 예가 있겠다. 이번 서도호 + 래코드 협업에서 만들어진 워크 재킷의 경우에도 명시적으로 이것은 작품이 아니라 실착용을 염두해 둔 옷이라고 했었다. 과거의 기억, 추억, 관계 등을 주머니와 직물, 옷이라는 매개를 통해 풀어낸 다음 이것을 옷으로 만들었다.
예술을 위한 패션. 전시장에 놓기 위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패션을 활용한 경우다. 이 경우는 천을 짜거나, 옷을 만들거나 하는 예술가들로 예가 꽤 많은 편인데 패션의 작업 방식을 활용하거나 패션 제품들을 도구로 다루는 방식 등이 있겠다.

- 예를 들어 칠레의 예술가 세실리아 비큐나의 경우 비큐나의 양모를 직물로 짠 클라우드 넷 설치 시리즈를 만들었던 게 생각난다. 갑자기 생각하려니까 떠오르는 분들이 많지가 않은데 아무튼 꽤 많다.
- 그리고 패션 제품을 도구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꽤 예전에 봤던 거긴 한데 아트 선재에서 했던 실비 플러리 전시 리플렛을 보면 "작가는 현대사회에서 피상적 분야로 간주되는 패션, 뷰티, 쇼핑에서 작업의 소재를 찾고, 그것을 예술과 연결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페인트로 칠한 에르메스의 켈리백이나 자동차가 밟고 지나간 MAC 화장품 등을 작품화 했었다. 최근 들어서는 이렇게 직접적으로 도구화하는 경우는 많이 못 본 거 같기는 하다.

이런 식으로 구분해 놓고 생각을 좀 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