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타적 패션
패션의 성격 중 하나로 배타성이 있다. 사람들은 아무나 살 수 없는 옷, 가방, 구두 같은 걸 구해 입으며 그런 걸 찾아낸 정보의 우월성, 구매할 수 있는 권력적 우월성,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금전적 우월성 등을 드러내려고 하고 이를 통해 패션적 우월성을 가지고 있으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고급 패션 쪽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애초에 만드는 데 오래 걸리고 많이 만들지도 못하니 그냥 가지고 있다는 것만 가지고도 과시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레디 투 웨어, 프레타 포르테의 시대에도 반복되었다. 많이 만들 수 있더라도 조금만 만들면 된다.
사실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직물이라는 건 기후 등 환경 요건에 따라 한 번 뽑아낼 때마다 조금씩 다르다. 고급 직물은 더욱 그렇다. 단추 등 부자재도 비싸게 만들려며 얼마든 비싸게 만들 수 있다. 미세한 차이를 식별할 수 있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만남 속에서 비록 레디 투 웨어라지만 일정한 퀄리티를 유지하면서 공산품처럼 대량 생산을 하기는 쉽지 않다.

21세기 들어 스트리트 패션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런 배타성을 가격에 반영하는 기술은 고도로 발전했다. 대량 생산이 가능한 공산품이라도 조금 만들어 접근이 어렵도록 하고, 뮤지션이나 아티스트가 개입되어 있는 스토리 위에 놓이면 얼마든지 과시를 위한 배타적 패션 아이템이 될 수 있다. 티셔츠 위의 문구, 프린트, 로고 같은 게 그런 배타성을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이 부분도 완전 이해를 못할 건 아니다. 일단 높은 가격표는 강제가 아니다. 살 사람은 사고 안 살 사람은 안 사면 된다. 이해가 가고 안가고는 각자 개인의 영역일 뿐이다. 그러므로 가격이란 엄연히 생산자의 몫이다. 또한 스트리트 패션의 시대에는 파편화된 문화적 집단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집단 속의 플레이어든 소비자든 자신이 머물고 있는 자리는 곧 일종의 정체성이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패션 리더들은 레어 아이템을 확보하고 그걸 드러낸다. 따라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지만 어디서 파는지 모르거나 지나치게 비싸다는 장벽이 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약간 김유정 소설 “동백꽃”에서 점순이가 “느 집엔 이거 없지?”하던 말이 떠오르는데 그것과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다. “느 집엔 이거 없지”와 안데르센의 벌거벗은 임금님이 현대 패션 산업을 관통하는 두 가지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이런 희소성, 배타성, 신비주의에 대해 동의를 하고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애초에 접근이 불가능한 혹은 어려운 아이템을 굳이 찾아나서고 그만한 비용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패션이 무조건 보편성과 높은 접근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성벽을 쌓고 있다면 딱히 사다리를 끌고 와 고생하면서 올라갈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그런 패션의 존재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각자 자기 재미있는 걸 찾아가면 될 일이다. 그냥 느 집엔 그거 있구나 한다는 이야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