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가 정체성인가

macrostar 2026. 6. 22.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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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가 정체성을 구성한다”는 말을 최근 자주 마주친다. 취향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글 뿐만 아니라 유행 중심의 패션에 대한 반감의 글 그리고 마케팅이 얹혀져 있는 패션 브랜드의 글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는 여러가지 대안 중에서 무엇인가를 사고 그걸 사용한다. 여기서 무엇인가를 선택한다는 행위에는 아마도 자신의 취향, 삶의 방식, 태도, 지금까지의 경험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을 거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소비는 자신을 구성하는 방식이 된다. 이렇게 보면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다.

 

사실 이 말은 약간 사상적인 유래를 가지고 있는데 장 보드리야르가 사용가치보다 기호가치가 상품의 본질적 구성요소가 되었고, 구매한 상품의 전시를 통해서 타인과 차이를 만들고 유지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나온 걸로 알고 있다. 명품 소비에 대한 비판에서 흔히 듣는 베블렌의 과시적 소비가 계급 과시에 기반하고 있다면 장 보드리야르는 이를 소비 사회 전체로 확장했다.

 

이건 그냥 대충 알고 있는 거고 딱히 찾아보고 싶은 생각도 별로 안 드는 내용이라 다른 심오한 유래나 줄기가 있을 지 모른다. 관심이 간다면 찾아보길 권한다. 아무튼 소비가 곧 정체성이라는 말은 직관적으로 알아들을 수가 있다. 사실 저 학자들은 소비 사회에 대한 비판의 시선이 담겨있고 그러니까 정신 차리고 경계하자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었을 텐데 막상 저렇게 정리해 놓고 나니 정말 그러네 쪽으로 흘러버렸다.

일단 패션 브랜드 입장에서는 옷을 팔 수 있는 꽤 근사한 레토릭이 생겼다. 리바이스는 단지 청바지가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다. 이 청바지의 데님은 튼튼하고 리벳이 박혀 있어서 잘 안 뜯어지고 이런 설명보다 훨씬 그럴 듯 하다. 반스는 그냥 운동화가 아니라 캘리포니아의 자유로운 스케이트 보더의 라이프스타일이다. 신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런 인생과 함께 할 수 있다.

 

 

이건 소비자에게도 옮겨갔다. 어차피 우리는 무엇인가 사야만 한다. 여름이 다가오고 티셔츠를 좀 구입할까 할 때 수도 없이 많은 선택지가 있다. 그리고 그 많은 것들 사이에서 마음에 드는 걸 고른다. 이 선택은 바로 소비자가 지향하는 바, 취향이고 그것들은 지금까지의 경험과 태도의 결과다. 즉 기준은 취향이고 그를 통해 정체성이 형성된다 혹은 드러난다.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보면 자신이 선택한 영역 내에서 기준이 조금씩 더 명확해 지고, 의지를 가지고 절대 선택하지 않는 영역이 생겨난다. 입는 것, 먹는 것, 쓰는 것 모두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그러므로 소비는 한 사람의 가시적 정체성이 되고 거기에는 내면적 정체성이 투영된다. 

 

사실 가지고 있는 생각, 사상, 지식 같은 것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관심이 가는 사람을 오랫동안 관찰해도 알까 말까 한 것들이고, 자기 자신도 생각하는 게 태도인지 열망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결정적이고 위태로운 순간을 거쳐야 약간은 알게 된다. 요즘처럼 가시성 높은 세상에서 결국은 눈에 띄는 모습이 판단의 기준이 되기 쉽다. 

 

하지만 여기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이 말 자체의 문제점이다. 간단히 소비자의 상황을 부와 빈으로 나눠보자.

 

부 - 취향이 있다면 구성할 수 있다, 취향이 없어도 구성할 수 있다

부 - 취향도 없고 구성도 안된다

빈 - 취향이 있어봤자 구성이 불가능하다

빈 - 취향도 없고 구성도 안 된다

 

이 구도만 봐도 소비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생각, 사상, 지식, 취향을 실현할 물건을 구입할 수 있을 때만 성립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결국 저 말은 취향이 없는 부유한 인간에게만 효용이 있다. 그렇지만 부는 그 자체로 시그널이기 때문에 취향이 없는 건 그따위에 신경 쓸 틈이 없을 정도로 돈 버느라 일이 많다는 표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 마크 저커버그의 티셔츠나 빌 게이츠의 카시오 시계 등 그런 예는 많다.

 

다시 생각해 보면 이 문장은 부는 있는데 근사한 물건을 사지 않는 이들을 향한 패션계의 구애의 목소리라 할 수 있다. “이 정도는 입어야 하지 않겠어요”라며 달래거나 “그 따위로 입는 건 졸부의 룩이다”라며 위협도 해 본다. 결국은 이번에 내놓은 기본에 충실하고 전통적이고 유행과 떨어져 있는 우리가 내 놓은 새 제품을 사보라는 이야기다. 그러다가 현대 사회에서 소비가 곧 자아라는 곳까지 나아가 버린 거다.

문제는 이 갭을 느끼는 사람이 그걸 해소하려고 할 때 나온다.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야라는 불만은 무리해서 소비를 하게 만들던가, 현실과 구조 자체를 탓하게 할 수 있다. 사실 많은 이들이 이미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취향이 있든 말든 살 수 없다면 아무 소용도 없고 오히려 오해나 편견 때문에 세상에 대해 가지는 불만이 늘어날 수도 있다. 

 

게다가 취향은 이미 제품 리스트가 되어가고 있다. 유행에 지나치게 휘둘리지 않는 클래식 아이템의 목록이 정해진다. 이런 일은 스타일처럼 마치 영속적인 옷 입는 세련된 방식이 표면 위로 떠올랐을 때 언제나 반복되었다. 결국 저 제품은 스타일이 아니야 우리 걸 사의 다른 표현 방식이다.

 

또한 여기에 드리워져 있는 또 다른 문제점은 생산자와 소비자 양쪽에 드리워져 있는 위계의 느낌이다. 더 좋은 취향의 물건이 있다면 나쁜 취향의 물건이 있다. 돈으로 취향을 구축한 이와 그런 걸 신경쓸 틈도 없이 바쁜 이들 사이에서 패션 산업은 꼬시기 쉬운 쪽에 접근해 간다. 그리고 “취향이 더 좋은 물건”의 존재는 내가 필요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보다 더 나은 무언가가 있고 그게 더 옳은 것이라는 분위기를 만든다. 정체성이라는 단어가 그런 뉘앙스를 강화한다.

 

그리고 취향과 정체성이라는 단어는 은근히 타인을 지향한다. 패션이 자신을 향해가고 있다는 흐름을 역류한다. 애초에 가시적 취향과 가시적 정체성이 필요한가에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냥 각자 자기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면 되고 남들의 정체성 같은 건 알 필요도 없고 알 수도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서로의 반응 뿐이다. 빈티지 에르메스 손수건으로 드러내는 정체성보다 나이스하고 친절한 행동과 말투가 훨씬 효과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사야하고 거기에는 기준이 필요하다. 취향, 그로부터 만들어지는 정체성 같은 지나치게 거대하고 동시에 마케팅의 용어가 된 기준 외에 또 뭐가 있을까. 이건 사람마다 다르다. 나의 경우 필요와 호기심이다.

 

일단 필요는 필요해서 사는 거다. 여기에는 딱히 취향의 미감 같은 게 필요하지 않다. 그저 쓰려던 용도에 딱 맞는다가 핵심이다. 필요에 가장 적합한 제품을 찾기 위한 시행 착오의 과정이 있다. 얼마나 검토할 지는 각자에 달려있다. 다이소에 가보고 필요한 게 있으면 그걸로 끝 이럴 수도 있고 몇 군데 더 돌아다녀 볼 수도 있다. 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검토해 볼 수도 있다.

 

또 하나는 호기심이다. 이건 특수한 요건으로 많은 이들에게 필요가 없다. 하지만 패션이나 물건에 관심이 많다면 발휘할 요건이 된다. 나 같은 경우 시에라 디자인스의 60/40이라는 제품이 궁금했다. 이 클래식한 제품이 대체 왜 지금까지 만들어지고 있는건지, 많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왜 그들에게 인기가 있는건지 궁금했다. 그래서 뒤적거리다가 괜찮은 매물을 찾아 결국 구입을 했다. 

 

막상 구해서 입어보니 생긴 게 아주 마음에 든 건 아니었지만 분명 요긴했다. 초봄, 늦가을 환절기에 바람도 잘 막아주고, 주머니도 많고, 크로스 60/40 직물의 독특한 컬러와 촉감도 좋았다. 특수 필름이나 코팅이 들어 있지 않아서 관리에 어떤 까다로움도 없었고 수명도 훨씬 길다. 요즘 나오는 제품에는 물 빠진다고 세탁 금지라는 라벨이 붙어 있다지만 그냥 세탁기에 돌리면 된다. 

 

사실 이 정도로 이래서 잘 팔리는구나 하고 완전히 납득이 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요긴했다. 충분히 훌륭하다는 결론에 다른 컬러 매물이 눈에 띄면 또 사들였다. 그러다 보니 지금 이게 4벌이나 있다. 호기심이 필요를 충족하고 수요를 만드는 경우다. 이를 권장하는 건 아니다. 그 어떤 사람에게도 4벌의 시에라 디자인스 60/40이 필요하지는 않다. 튼튼하고 긴 수명으로 경년변화를 느낀다는 관점에서 더욱 그렇다. 나 같은 경우 이런 데다 무슨 이야기라도 써보려고 산 것도 있다. 그러므로 특수하다.

 

아무튼 소비와 취향은 자아 같은 게 아니다. 그건 단지 각자가 가지고 있는 현재 상황의 일시적 결과일 뿐이다. 그러므로 델리킷하고 진중하면서 세련되고 남들과 비교해 봤을 때 조금 더 자신의 태도를 드러낼 수 있는 옷 뭐가 있을까 하고 누군가 물어봤을 때 내 대답은 그냥 가지고 있는 옷이나 계속 입는 게 좋지 않을까 정도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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