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퍼스펙티브

macrostar 2026. 5. 14.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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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이 너무 시끄러워서 나와서 패스트푸드 점에 앉아 책을 읽다가(501XX는 누가 만들었는가를 이제야 읽기 시작했다) 문득 최근 1, 2년간 떠들었던 말들, 썼던 글들에 대해 생각했는데 가지고 있던 패션에 대한 퍼스펙티브 중 어떤 것들을 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뭐랄까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패션을 바라보는 방식 같은 건데 그게 나의 문제인가 혹은 패션의 문제인가를 따지다 보니 결국 양쪽이 서로 주고받은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알레산드로 미켈레 - 구찌가 뭐 시공을 초월할 정도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당시 10년 간 어떤 기준점을 제공했던 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 시절이 끝나고 갑자기 무주공산이 되면서 나는 길을 잃어버렸고, 패션도 방향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1년 두 시즌 혹은 네 시즌 계속 옷은 나오고 있으니 방향을 잃었다고 해서 멈춰버리는 건 아무 것도 없겠지만 다들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뚜렷한 방향이 보이는 건 아니다.

 

이런 게 다양성의 세상이 아닌가, 나쁠 게 뭐가 있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양성이라는 건 지금까지 기반 위에서 각자 탑을 쌓아가는 거지 아무대나 구멍을 파고 있는 건 아니다. 구멍을 파다 보면 혹시나 답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돈 주고 그런 걸 팔고 있고 사고 있는 건 약간 다른 문제가 된다.

 

 

아트 스쿨 졸업 작품 같은 요란한 패션들이 넘실대는 것도 좀 짜증나고 옷이 걸려있는 모습만 봐도 시끄럽다. 안 웃긴 농담을 계속 하면서 유행어 만들기를 보고 있는 것도 끝물인 시절 개콘을 보는 것 같다. 콰이엇 럭셔리 같은 건 이해도 안 갈 뿐더러 용납하기 어려운 방향성이고, 갑자기 과거에 집착하면서 드레스 메이킹의 전통을 끄집어 내는 것도 할 이야기가 없으니 저러나 싶을 뿐이다.

 

패션 컬렉션의 세계 바깥으로 눈을 돌려봐도 역시나 뭐하나 걸려라 하면서 눈가리고 총을 쏴대는 것 같고, 캡샤-오라리-아프레세로 이어지는 세계는 레플리카 시절에 좋은 포장지를 입혀 동어반복을 계속 하고 있는 것 같다. 패션은 원래 포장지 아닌가 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딱히 할 이야기도 없으면서 계속 떠드는 건 적당히 좀 하지 싶은 게 사실이다. 대충 폼나는 유행 굿즈나 만들어서 잘 팔리면 그만 아닌가 하는 주장들도 지긋지긋하다. 그런 걸 만들고, 팔고, 사고, 보고, 쓰겠다고 이 큰 산업 필드가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는 자신도 한심하다.

 

(이런 것도 패션이라는 방향에서 볼 수 있다면) 아레나의 신형 수경이나 유이치 토야마의 안경 같은 걸 보면서 무게가 느껴지고 부피가 잡히는 물체, 덩어리가 지닌 매력을 여전히 좋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지금의 패션에서 그런 기분을 느끼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러다보니 자꾸 숲과 그 숲이 만들어진 땅을 쳐다보지 않고 디테일에만 집착하게 된다. 옷을 보러가서 전체의 실루엣은 흘려버리고 옷감의 페이딩, 단추의 낡음 재현, 부자재의 완성도, 레퍼런스를 어디서 또 발견했을까 같은 것만 들여다보고 있다. 문득 패션 디자이너를 만났을 때 떠들었던 이야기들이 창피해진다. 말하면서도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퍼스펙티브 자체를 망각하고 뭘 보고 느껴야할지도 혼란스러워 하고 있으니 아무 말이나 떠들게 된다.

 

이렇듯 망각은 결국 후회와 반성을 만든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 무엇을 더 단단히 만들어야 할까, 이런 상황에서 기준으로 삼을 만한 지점은 과연 무엇인가, 이런 생각들을 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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