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퍼스펙티브
도서관이 너무 시끄러워서 나와서 패스트푸드 점에 앉아 책을 읽다가(501XX는 누가 만들었는가를 이제야 읽기 시작했다) 문득 최근 1, 2년간 떠들었던 말들, 썼던 글들에 대해 생각했는데 가지고 있던 패션에 대한 퍼스펙티브 중 어떤 것들을 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뭐랄까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패션을 바라보는 방식 같은 건데 그게 나의 문제인가 혹은 패션의 문제인가를 따지다 보니 결국 양쪽이 서로 주고받은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알레산드로 미켈레 - 구찌가 뭐 시공을 초월할 정도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당시 10년 간 어떤 기준점을 제공했던 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 시절이 끝나고 갑자기 무주공산이 되면서 나는 길을 잃어버렸고, 패션도 방향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1년 두 시즌 혹은 네 시즌 계속 옷은 나오고 있으니 방향을 잃었다고 해서 멈춰버리는 건 아무 것도 없겠지만 다들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뚜렷한 방향이 보이는 건 아니다.
이런 게 다양성의 세상이 아닌가, 나쁠 게 뭐가 있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양성이라는 건 지금까지 기반 위에서 각자 탑을 쌓아가는 거지 아무대나 구멍을 파고 있는 건 아니다. 구멍을 파다 보면 혹시나 답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돈 주고 그런 걸 팔고 있고 사고 있는 건 약간 다른 문제가 된다.

아트 스쿨 졸업 작품 같은 요란한 패션들이 넘실대는 것도 좀 짜증나고 옷이 걸려있는 모습만 봐도 시끄럽다. 안 웃긴 농담을 계속 하면서 유행어 만들기를 보고 있는 것도 끝물인 시절 개콘을 보는 것 같다. 콰이엇 럭셔리 같은 건 이해도 안 갈 뿐더러 용납하기 어려운 방향성이고, 갑자기 과거에 집착하면서 드레스 메이킹의 전통을 끄집어 내는 것도 할 이야기가 없으니 저러나 싶을 뿐이다.
패션 컬렉션의 세계 바깥으로 눈을 돌려봐도 역시나 뭐하나 걸려라 하면서 눈가리고 총을 쏴대는 것 같고, 캡샤-오라리-아프레세로 이어지는 세계는 레플리카 시절에 좋은 포장지를 입혀 동어반복을 계속 하고 있는 것 같다. 패션은 원래 포장지 아닌가 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딱히 할 이야기도 없으면서 계속 떠드는 건 적당히 좀 하지 싶은 게 사실이다. 대충 폼나는 유행 굿즈나 만들어서 잘 팔리면 그만 아닌가 하는 주장들도 지긋지긋하다. 그런 걸 만들고, 팔고, 사고, 보고, 쓰겠다고 이 큰 산업 필드가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는 자신도 한심하다.
(이런 것도 패션이라는 방향에서 볼 수 있다면) 아레나의 신형 수경이나 유이치 토야마의 안경 같은 걸 보면서 무게가 느껴지고 부피가 잡히는 물체, 덩어리가 지닌 매력을 여전히 좋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지금의 패션에서 그런 기분을 느끼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러다보니 자꾸 숲과 그 숲이 만들어진 땅을 쳐다보지 않고 디테일에만 집착하게 된다. 옷을 보러가서 전체의 실루엣은 흘려버리고 옷감의 페이딩, 단추의 낡음 재현, 부자재의 완성도, 레퍼런스를 어디서 또 발견했을까 같은 것만 들여다보고 있다. 문득 패션 디자이너를 만났을 때 떠들었던 이야기들이 창피해진다. 말하면서도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퍼스펙티브 자체를 망각하고 뭘 보고 느껴야할지도 혼란스러워 하고 있으니 아무 말이나 떠들게 된다.
이렇듯 망각은 결국 후회와 반성을 만든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 무엇을 더 단단히 만들어야 할까, 이런 상황에서 기준으로 삼을 만한 지점은 과연 무엇인가, 이런 생각들을 좀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