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 패션의 콜라보
가끔 언론에서 패스트 패션 브랜드와 디자이너 컬렉션을 두고 수십, 수백 만원짜리 옷을 단 돈 몇 만원에 구입하는 기회라는 식으로 쓰는 경우를 볼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옷을 사는거냐, 브랜드를 사는거냐의 시각으로 이 문제를 볼 수 있다.

브랜드를 사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로고가 가격의 거의 모든 것을 구성하고 거기에 특유의 디자인 같은 게 살짝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패스트 패션 콜라보의 대부분의 경우 원래의 디자인을 받아오진 못한다. 엔지니어드 가먼츠라면 좌우 비대칭, 니들스라면 복슬복슬에 아메리칸 네이티브 그리고 나비 뭐 이런 식으로 심볼릭한 부분 몇 개를 가져다 열화를 하는 식이다. 아무튼 이런 관점에서 수십, 수백 만원짜리 옷을 단 돈 몇 만원에 구입한다는 레토릭은 설득력이 있다.
예를 들어 GU와 언더커버의 콜라보의 가격이라면 옷의 가치 A원에다가 언더커버 로고의 가치 B, 그런 옷을 GU가 깎아먹는 가치 -C로 구성될 거 같다. 대신 로고가 특별판, 한정판이라는 보증을 해주기 때문에 인기있는 콜라보라면 감각상각률을 낮출 유인이 된다. 그냥 GU 옷이라면 1년 지나면 1/5~1/10 가격으로 떨어지겠지만 언더커버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면 심지어 오를 수도 있다.
옷을 사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이런 건 아무 소용없는 이야기다. 오히려 로고는 가격대비 완성도를 깎아먹는 역할을 한다. 즉 언더커버 로고가 없다면 A가격에 팔 수 있었을텐데 로고가 들어가는 바람에 그보다 높은 가격을 붙이게 된다. H&M과 글렌 마틴스 같은 콜라보를 되돌아보면 복잡한 디자인과 옷의 수명, 재질 사이에서 전자에 들어가는 비용이 높기 때문에 후자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여기서 글렌 마틴스의 디자인은 위 로고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이런 선택의 묘미가 있긴 하지만 결론적으로 뭘 하든 그냥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옷이다. 즉 수 만원짜리를 수 만원에 구입하는 일이다. 그 사실을 항상 명심하는 게 좋을 거 같다. 그러므로 언더커버 옷을 입어보고 싶지만 돈이 없으니 GU 언더커버의 옷을 사보겠다는 발상은 하지 않는 게 낫지 않나 싶다. 그냥 GU 언더커버를 입어보는 거다. 사실 당연한 일인데 뉴스에 - 보도 자료에 기반한 걸 수도 있고, 좋은 낚시 수단일 수도 있고 - 나오는 기사를 볼 때 마다 저런 이야기를 여기에 붙여도 되는건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덧붙여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