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자유로움

macrostar 2020. 10. 1.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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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패션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못생긴 옷,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듯한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은 세상에 이미 많이 있었다. 예를 들어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느라 패션 같은 데 신경 쓸 돈도 시간도 없는 사람들, 편한 복장을 선호하는 실용적인 여행자들, 옷이란 그저 추울 때 따뜻하면 되고 튼튼하고 관리가 편하면 좋다는 이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옷에 사실 꽤 익숙한 편이다.

 

등산복 패션, 골프복 패션, 관광객 패션 등등은 모두 편안함을 극도로 중시하는 방식이다. 즉 옷에서 형식이라는 부분을 제외시킨다. 물론 편안하겠지만 이런 옷차림은 패션 파괴자 같은 놀림을 꾸준히 들어왔다. 그런데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편안함과 실용성을 중시하고 있다. 유행하는 패션도 스포츠, 아웃도어 등에 맞춰진 옷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얼마 전에 발표된 리안나의 세비지 X 펜티 남성복 캡슐

 

현대의 사회는 형식미보다는 보다 목적을 중심으로 실용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편안한 복장이 유행하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정장 특유의 갖춰 입기도 재미있게 즐기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런 형식미는 본래 사회적 약속으로써 존재한다. 이 말은 결국 남에게 보이기 위한 방식이라는 뜻이다. 혼자 남은 세상에서 포멀 웨어를 갖춰 입는 건 그저 재미를 위해서 외에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을 거다.

 

그런데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중시하고, 타인의 삶을 존중한다면 옷만 가지고 무엇인가를 판단할 리는 없다. 말하자면 형식미를 이용해 타인에게 어필을 해야 할 이유가 줄어든다. 즉 겉모습만 가지고 판단하지 않는다라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옷의 형식성을 느슨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런 덕분에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체형과 신체적 특징, 취향과 선호에 따라 옷을 입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런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옷을 맘대로 입자"라는 건 환상일 뿐이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는 옷 때문에 누구에게도 쓴소리를 듣지 않을 사장, 고위직이나 마음대로 입고 다닐 수 있을 거다. 정장을 입어야만 하는 곳에 트레이닝 복을 입고 갈 수 있다는 건 그래도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권력자와 비권력자 뿐만 아니라 성별, 인종, 민족 등등 권력 비대칭이 있는 모든 곳에서 이런 일은 나타난다.

 

즉 옷을 마음대로 입을 수 있다는 건 그저 사회적 권력을 표시하는 방법 만이 될 수도 있고, 심지어 꽤나 마음 대로 입고 있을 수 있다는 걸 자신은 모르고 있을 가능성도 높다. 결국 패션의 자유로움은 고급 패션 브랜드가 티셔츠와 트레이닝 복을 내어 놓으며 이뤄내는 일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 낸 결과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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