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옷의 기억 그리고 유니클로의 무톤후리스재킷
며칠 전에 유니클로 구경을 하다가 이런 옷을 보았다.
이름은 윈드 프루프 무톤후리스재킷. 윈드 프루프는 방풍 처리를 했다는 거고 무톤은 mouton, 그러니까 원래는 양가죽을 물개 표면처럼 가공한 거고 흔히 무스탕이라고 부르는 건데 위 옷은 물론 무톤風이다. 후리스는 안에 털이 붙어있다는 소리. 특수한 방풍 필름을 넣었다는 데 뭔지 모르겠고 뭐 어쩌구 저쩌구 하지만 결론은 폴리에스터 100%. 정가는 4만 9천 9백원(링크). 어쩌다 2015년 가을에 이런 옷이 세상에 나왔는지 전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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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아주 어렸을 적에 갑자기 무스탕이 입고 싶어진 적이 있다. 하지만 무스탕은 어린 아이가 맘대로 살 수 있는 옷은 아니고 그래서 고터였나 어디었나를 돌아다니다가 저 유니클로 재킷과 거의 비슷하게 생긴 무스탕 풍 아우터를 구입했었다. 생긴 건 정말 비슷하다.
안에는 털이 꽤 잔뜩 달라 붙어 있고 겉에는 브라운으로 칠해져 있었는데 실상 안이나 밖이나 재질 면에서 다를 건 없었고 말 그대로 모양만 다른 타입. 그 옷은 아주 두꺼웠지만 결론적으로 유니클로의 옷이 해결하고 있다는 방풍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해서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그런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옷이었다. 어디다 써 먹을 곳이 없었는데 겨울에 집 안에서 입는 옷으로 대충 사용했었다. 당시 기름 보일러여서 기름을 사 오는 게 귀찮기 그지 없는 일이었는데 나중에는 그 전용으로 입었다.
참고로 옷 표면에 기름때가 묻으면 방풍이 된다. 1차 대전 당시 모 장교가 그걸 알아내 방풍 재킷을 생각해 냈고 영국 공군은 시드콧이라는 플라이트 수트를 개발했다... 하지만 저 당시 경험에 의하면 기름 냄새가 아주 지독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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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몇 년이 지나 저런 식으로 생긴 오리털 점퍼가 문득 입고 싶어져서 또 돌아다니다가 위 옷과 비슷한 데 안에 털이 없고 오리털 패치의 안감이 붙어 있는 옷을 샀다. 구입해 봤던 무명씨 아우터는 이 둘의 거의 유일한데 이쪽도 가격은 위에서 말한 천 무스탕과 비슷했던 거 같다. 이건 정말 거리를 걷다가 어 싸다 + 따뜻하겠다 하고 샀던 거 같다.
여튼 이 옷은 당시의 내게 여러가지 교훈을 줬는데 그 중 하나가 1930년 대에 에디 바우어가 고민하다 해결했던 바로 그 문제다(링크).
즉 그 옷은 (오리털로 추정되는) 털이 (이상할 정도로) 왕창 들어 있었는데 겉감과 퀼트 부분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부실해 페더들은 각자 자유롭게 가고 싶은 데로 날아갔다. 결론이야 뭐 그 무엇이든 중력의 힘을 거스를 수 없다는 거고 결국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다가 허리 부분에 오리털이 가득 들어차게 되었다. 동시에 특히 등 부분은 텅텅 비어 얇은 양면의 천만 남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동할 때마다, 가끔 앉아 있을 때마다 매우 명확한 흔적을 남겼다. 산산히 날리던 그 하얀 털들의 모습이 여전히 선명하다... 어쩌다 그렇게 많이도 들어 있었는지. 이 옷은 그렇지만 이상하게 많이 들어있던 털 들이 나름 요긴해 당시 너무나 춥던 방에서 뒤집어 쓰고 있으면 (날리는 털에 폐병이 걱정되긴 했지만) 아무튼 생존을 도와줬다. 뭐 여튼 심지어 잠 잘 때도 입고 그 위에 오리털 이불을 덮고 이중 오리털이라며 좋다고 잤었다. 이 옷도 지금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