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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옛날 패션쇼, Dries van Noten, 1997 SS

by macrostar 2011.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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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패션쇼를 들춰보는 건 어떤 의미일까. 디자이너라면 뭔가 막히고 있다고 느껴질 때나, 답답할 때, 혹은 은퇴한 다음에 뒤적거려보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나 같은 경우는? 그냥 우연이다.

 

뒤적뒤적거리는 거야 시도 때도 없이 계속 하는 일이고, 그러다 뭔가 눈에 띄이기도 하는거고. 다만 자기가 몇 년 전에 블로그나 수첩에 써 놓은 글을 보고 뭐 이런 이야기를 했냐 싶어 놀랄 때가 있듯이 다른 사람의 작업도 보고 놀라거나, 영감을 받거나 할 때가 있다. 요즘엔 왜 이런 걸 안하고 있지 싶은 생각도 들고, 이 양반도 옛날에는 참 유치했구나 싶을 때도 있고.

 

여기에 약간 덧붙이자면 2000년 쯤에 처음 패션에 관한 포스팅이나 글을 남기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1997 Helmut Lang이라든지, 1994 Ann Deemeulemeeter라든지 하는게 찾을라면 찾을 수가 있었다. 인터넷의 DB는 영원할 거라 믿었고, 그래서 저장해 놓은 것도 별로 없었다(사실 몇 몇 디자이너는 모았던 게 있는데 하드가 망가지면서 함께 사라졌다).

 

요즘 들어 이게 무척 후회된다. 10년 만 지나도 찾을 길이 없는 것들이 널려있다. 스타일 닷컴에 꼬박꼬박 쌓여있는 것도 거의 2000부터다. firstview.com에 가면 Dries van Noten의 1997 SS를 찾을 수는 있지만(1996 SS 부터 있다) 딱히 별 거 하는 것도 아닌데 잠깐 감동하자고 하루 20불, 일년 500불 짜리 서비스를 쓰기도 좀 그렇고, 잡지는 몇년 치 쌓여있던 걸 누가 다 버려가지고 가지고 있는 게 없고.

 

개인 용도로 나중에 구경이라도 할 생각이면 지금이라도 모아두는 걸 추천한다.

 

 

 

 

 

앤트워프 출신 디자이너들에 대해 기본적으로 진중하고, 패턴이 복잡한 옷들이 많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반 노텐은 그래도 컬러풀한 옷들을 많이 선보인다. 1997년 SS 같은 경우 꽤 재미있었다. 마지막에 거대한 패션쇼장에 주르륵 늘어서는데 색이 워낙 다양해 그것만 보고 있어도 왠지 흐뭇해 진다.

 

 

 

 

 

안트워프 이야기나 조금 더 해보자. 1980년에서 1981년 즈음에 앤트워프의 로열 아카데미 오브 파인 아트를 졸업했던 학생들이 80년대 중반에 우르르 데뷔한다. 대표적으로 앤트워프 6라고 불리는 6명이 있다. Dries van Noten을 비롯해 Walter Van Beirendonck, Ann Demeulemeester, Dirk van Saene, Dirk Bikkembergs, Marina Yee.

 

 

누가 누군지는 굳이... 이들 모두의 공통점 중 하나는 선생이 Linda Loppa라는 사람이었다는 사실. 벨기에에서 활동하다가 1988년에 트럭을 빌려 컬렉션을 몽땅 싣고 런던 패션 페어에 참가하면서 월드 무대에 들어서게 된다.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경우엔 같은 학교를 1980년에 나왔는데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좀 활동하다가 장 폴 골티에에 가서 일하다가 솔로 데뷔가 늦어져 1989년에 첫 개인 컬렉션이 나왔다. 에르메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한참동안 하기도 했고, 레이 카와쿠보(꼼 데 가르송)의 영향을 특히나 많이 받기는 했지만 앤트워프 6 + 1 정도로 봐도 크게 무리는 없을 듯. 그래봐야 이젠 옷도 안 만든다니까.

 

마르탱은 얼굴 찍힌 사진이 거의 없는데2008년에 NYT에 찍힌게 처음인가 그렇다. http://www.fashionboop.com/172 여기에 올려놨었다.

 

 

 

 

다시 반 노텐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반 노텐은 1985년에 자신의 레이블을 처음 만들었고, 1993년에 파리에 진출한다. 이 사람 패션에서 가장 신경써서 볼 부분은 역시 패브릭이 아닐까 싶다. 적절한 패브릭의 사용과 그 재구성으로 컬러와 프린트, 자수 같은 걸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위 사진에서 보면 알겠지만 그냥 ordinary한 옷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옷들은 마냥 낯설지만은 않다. 다른 앤트워프 피플처럼 옷을 심하게 재 구성하지는 않는다. 거기에 샬랑거리는 반 노텐 특유의 로맨틱이 담겨있다.

 

이렇게 로맨틱한 걸 자주 테마로 삼는 사람은 아주 별다른 걸 보여주지 않는 한 사실 기억되기가 무척 어렵다. 그쪽 필드에 몸 담고 있는 디자이너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반 노텐은 이런 걸 하는 사람이지.. 라는 이미지를 형성시키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꽃무늬, 샬랄라로 들어서면서 일류 레벨을 노리는 디자이너들은 나름 대단히 용기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위험한 포지셔닝이다. 꽃무늬나 페이즐리가 들어가면 뭐든 괜찮아 따위의 세상은 오지 않기 때문이다.

 

어쨋든 이 사람의 다른 취미 중 하나가 가드닝이라고 하는데 분명 도시적이지만, 뭔가 시골.. 이라기 보다 풀밭 냄새가 담겨 있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지 않나 싶다. 가격만 적당하다면 야자 열매를 먹고 있어도 어울리고, 밭 일을 하고 있어도 어울린다. 개인적으로 반 노텐이 드뮐미스터나 마르지엘라 정도로 앞서있는 디자이너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난 이런 묘한 균열들이 무척 재미있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1997 SS도 예쁘지만 2007 SS도 참 예쁘다.

 

 

 

 

 

 

뭐 1997하고 2007이 예쁘다는 거 말고 사실 그닥 좋은 이야기는 별로 안 쓴거 같은데 개인적으로 이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가 하나 있다.

 

 

위 세 사진 모두 셔츠 안에 티를 입고 있다. 부디 셔츠 안에 티 받쳐 입는 다고 무조건 원시인 취급은 하지 말아 달라고. 여러가지 사정이라는 게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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