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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버질 아블로, 루이 비통, 2019 SS

by macrostar 2018.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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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비통 남성복을 맡게 된 버질 아블로의 첫 번째 패션쇼가 어제 있었다. 패션쇼를 보면서 파리 컬렉션의 역사 안에서 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의 루이 뷔통 쇼 중에서는 백인이 아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등장한 쇼가 아닐까 생각을 했다. 이 부분은 어쨌든 상당히 중요하다. 


아무튼 루이 비통을 맡은 최초의 흑인 디자이너다. 발망의 올리비에르 루스텡이 있긴 하지만 아무튼 가장 영향력있는 자리에 오른 사람 중 한 명이다. 또한 버질 아블로는 미국 사람이다. 루이 비통을 맡게 된 패션 엘리트 학교 출신이 아닌, 미국인, 흑인. 분명 상당히 파격적인 스텝이고 이런 흐름은 몇 년 전 디올을 맡은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처럼 LVMH가 확대하고 있는 브랜드 디렉터 풀의 확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쇼는 어떠한가. 그건 잘 모르겠다. 분명 역사적인 자리, 버질 아블로 등의 네임 밸류를 생각하면 시원찮고 게다가 상당히 이상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시원찮은 느낌의 출처가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 생각해 보게 된다. 즉 그 시원찮음의 판단 기준은 루이 비통, 파리 패션 위크, 패션 엘리트들이 만드는 패션이라는 구 시대의 관점일 수도 있다. 지금은 아주 기초적인 베이시스가 변화하고 있는 시기라는 걸 생각해야 한다. 하이 패션을 대체하는 스트리트웨어란 과연 무엇인가. (스트리트웨어의 관점에서) 일상을 아주 밑바닥부터 리셋해 다시 쌓는다는 하이 패션이라는 게 과연 무엇인가.


하지만 또한 생각할 수 있는게 이 패션의 대상이 누구냐는 점이다. 유럽의 기존 부자? 힙합 아티스트? 중국 갑부? 세계 도처의 부유한 젊은 연예인? 물론 모두다 사겠지만 타겟이 있긴 할 거다. 버질 아블로는 Youth라고 말했다. 1년 이상 쓰기 무척 어려울 게 분명한 루이 비통의 투명 가방을 살 수 있는 Youth? 물론 고급품이란 애초에 그런 운명을 가지고 있긴 하다. 



어떤 게 멋지다, 트렌드의 구성 방식, 트렌드의 진행 방식 자체가 아주 크게 변하고 있다. 또한 시카고, DONDA를 거친 사람들 중 패션에 걸쳐 있는 분들의 행보도 최근 아주 눈에 띈다. GEO, 사무엘 로스, 헤론 프레스톤, 매튜 윌리엄스 등등이 일을 벌리고 있고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분명 티셔츠나 만들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루이 비통에 들어간 버질 아블로가 과연 얼마나 영역을 구축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표지판이자 디딤돌 같은 역할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일단은 무엇이 팔리느냐, 얼마나 팔리느냐가 바로미터가 될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 물론 루이 비통 - 슈프림처럼 일종의 "왜곡"된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과연 "왜곡"이었을까. 지금 이 시점에 비싼 브랜드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게 과연 뭘까.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밖에 없다. 


사실 이 패션쇼의 역사적 의미 외에 패션쇼 그 자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것들이 있다. 


이런 일을 하는 분들은, 예컨대 정기적으로 패션쇼를 하는 것처럼 음반을 내는 일들도 해당된다 - 그래서 이 둘을 비슷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기도 하고, 자신의 특성 또는 자신이 하려고 하는 걸 내보이는 것 + 현재 시장에서의 포지셔닝 이 둘이 모두 중요하다. 앞쪽에만 집중하면 지나친 마이 웨이가 나온다. 물론 지나친 마이 웨이 역시 이런 영역에서는 중요하다. 다만 사이즈에 한계가 있고 마이 웨이에 호응하고 구매해 주는 사람들의 수가 다음 쇼 개최에 끼치는 영향이 지나치게 커진다.


또 현재 시장의 흐름을 내다보고 그 바로 앞을 제시하는 포지셔닝 역시 중요하다. LVMH에만 해도 수많은 럭셔리 브랜드들이 있고 이게 판매의 측면에서 겹치면 서로 피해를 볼 수 있다. 가능하다면 콘셉트를 차이나게 유지하고 타겟을 적절하게 차별화 시키는 게 좋다. 하지만 또한 이런 식으로 너무나 포지셔닝, 타겟에 집중하는 건 보통 너무나 뻔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럭셔리 패션의 임무 중 하나는 수요를 넓히는 거다. 고정된 수요를 가지고 서로 나눠먹기를 해가지고는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미래를 찾기가 힘들다. 


또한 포지셔닝에의 집중은 의도가 읽히기 쉽다. 가능한 허를 찌르며 사람들의 예상을 더 넓혀가야 하는 데 수가 너무 뻔하면 재미가 없고 흥미도 생기지 않는다. 이번 버질 아블로의 패션쇼는 지나치게 의도적이라는 점에서 약간 재미가 없었다. 물론 이번 쇼가 지니는 특유의 역사성 때문에 그 의도성이 쉽게 읽힐 정도로 있어야 한다는 것도 분명 맞는 이야기다. 이 발란스가 괜찮았는지는 시간이 더 지나야 알 수 있을 거 같다.


아무튼 덕분에 상황 판단에 매우 큰 도움이 된 쇼였다. 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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