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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의 책 이야기, 패션 vs 패션과 레플리카

by macrostar 2018.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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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의 책 이야기에서 두 권은 물론 제 책입니다... 두(링크) 권(링크). 


작년을 생각해 보면 책을 하나는 내놨지만 3개월 정도 있다가 서점에서 사라졌고, 또 하나는 원고를 완성해서 넘긴지 한참이 지났지만 책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있었죠. 즉 두 권의 책을 썼는데 서점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뭐 이런 게 알고보면 세상에 흔한 일일지 몰라도 책과 글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며 살고 싶은 사람으로선 역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그 사이에 1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2017년은 패션 자체로 봐도 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꽤 많은 게 변했습니다. 패션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 패션의 사람들에 대한 태도 둘 다 변했죠. 나중에 바라보자면 이 즈음이 80년대 중산층 진입으로 하이 패션이 크게 변한 이후 가장 큰 변화가 생긴 시점으로 평가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튼 두 권의 책이 이제 서점에 있는 상황이 되었고 그게 다행인지 뭔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그에 대한 나름의 소회를 적어봅니다. 물론 없는 것 보다야 있는 게 조금이라도 더 낫겠죠. 


또한 원래 뭔가를 책을 통해 주장하는 사람은 책을 쓸 때 직접적으로 거론하고 있는 주장 외에 좀 더 넓은 복선, 암시, 음모, 노림수 뭐 이런 걸 깔게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독자들이 책을 읽고 그걸 발견하면 기쁘지만 모른 척 하겠죠. 혹은 오해를 한다면 또한 슬프지만 역시 모른 척 하겠죠. 하지만 예전에도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건 많이 발행하고 많이 읽히는 경우의 이야기고 저 같은 사람은 그런 걸 큰 소리로 계속 외쳐도 사람들에게 겨우 들릴까 말까 뭐 그런겁니다. 그러니까 계속 이야기를 해 봅니다. 제 책은 말이죠 블라블라~



우선 레플리카. 원고를 한참 쓸 때는 레플리카, 웰-크래프트 캐주얼이 나름의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역시 그것도 변했습니다. 나쁘게 보자면 그 자체는 완전히 가라 앉았고, 좋게 보자면 스테디로 진입을 했고 또 패션의 어떤 부분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지금 원고를 쓴다면 책 레플리카는 조금은 다른 모습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주어진 두 번의 북 토크에서는 지금 썼다면 아마도 들어갔을 내용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그게 문서화 되어 책에 들어 있는 것과는 역시 다르죠.


그리고 사실 이 책은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와 옷 자체의 기술적인 이야기들이 책으로 성립하기 위한 장치로 작용하고 있을 뿐이고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그 사이에 들어가 있습니다. 책을 읽고 나면 "뭐야 웃기긴 한데 이런 건 오타쿠들한테나 소용있는 이야기잖아. 뭘 옷을 이렇게 까지... 그냥 내 맘대로 살아야지"를 유도하는 것이고 여기서 "내 맘대로"에 옷으로 삶의 즐거움을 찾아 보는 태도가 은근히 스며들도록 하는 걸 나름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물론 경년 변화를 의복 생활에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도 그중 하나가 될 수 있겠죠.


이 사이에 불균형이 좀 있습니다. 이건 제가 책을 쓰는 능력과 관련된 문제인데 어떤 식으로 발란스를 잡아야 할 지 기술적으로 정확히 정립이 되진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2017년의 변화 이후의 내용을 담지 못했다고 해도 이 부분은 조금 다르게 쓸 수 있었는데, 이 부분은 너무 안일하게 대했군 같은 아쉬움이 좀 있습니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그런 걸 기술적으로 담았다면 2017년 변화 이후 더 무의미해졌을 지도 모르죠. 그 불완전함 덕분에 지금도 읽을 이유가 생겼고요. 뭐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닐까요... 


여하튼 이 갭을 북 토크나 이런 데 쓰는 글로 메꾸려고 하고는 있는데 책을 보는 사람과, 북토크를 보는 사람과, 이곳의 글을 읽는 사람은 일치하지가 않죠. 이런 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긴 합니다.



그리고 패션 vs. 패션. vs에 점이 찍혀 있죠. 왜 찍혀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이 책도 생각해 보면 마음이 복잡한데 3개월 정도를 존재했고 그 다음에 사라졌습니다. 열심히 쓴 책이고 제가 패션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기본적인 방식과 태도가 여기에 들어 있기 때문에 아쉬움이 있긴 합니다만 할 수 없는 일이긴 하죠. 


그런데 어디서 무슨 이야기인가를 할 때면 "이 전 책인 패션 vs. 패션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 "아 그렇군요, 그 책을 볼 수 있나요?" -> "근데 그게 말이죠..."가 반복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또한 무명의 작가가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써놨고 그렇다면 그게 당장 바로 눈 앞에 있어도 살까 말까 하는 건데 지난 1년 간 없었습니다. 그러면 보통은 잊어버리죠. 책에서 이야기했듯 이건 패션 이야기고 그건 삶에서 너무나 중요해서 반드시 찾아야 할 그런 것도 아닙니다. 생존의 도구가 아니라 그저 삶을 조금 더 즐겁고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일 뿐이죠. 그러므로 이게 꾸준히 버티고 있지 않았던 이상 다시 발행하는 게 특히 상업적으로 의미가 별로 없을 거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도미노라는 이름을 떼어 버리고 이제 홀로 존재하고 싶은데 그것도 쉽지 않죠. 아무튼 이건 명목상 2판이고 서점에서 이 책에 대해 소개를 할 때면 과거를 끌어옵니다.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지금 새로 홍보를 하는 것도 이상하고, 안 하는 것도 이상하고 그런 복잡한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자의 이유 때문에라도 욕심을 부렸고, 그래서 이게 다시 이렇게 나왔습니다. 그렇게 된 이상 저로서는 좀 늦게 나온 새 책이라는 마인드로 임할 수 밖에 없는 거 같습니다. 언론에서도, 책을 보는 사람들도 새 책으로 대하진 않겠지만 그런 건 역시 할 수 없죠. 제가 생각하는 제 장점 중 하나는 지나가서 바꿀 수 없는 일에 미련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바꿀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이 상태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는 생각으로 살아요. 


그렇기 때문에 패션 vs. 패션은 2017년 이전의 패션 이야기로 자리매김을 해 볼 생각이고, 이게 지금의 패션 시장을 바라보는 뷰를 만들어 내고 또한 이해하는 역할을 분명히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리해 보자면 1980년대 여성 중산층의 진입으로 기존 귀족, 사교층 기반이었던 하이 패션이 새롭게 재구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게 마르지엘라, 알렉산더 맥퀸, 질 샌더 그리고 레이 카와쿠보나 요지 야마모토 같은 사람들에 의해 균열을 만들어 내고 모순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리카르도 티시와 니콜라스 게스키에르 같은 사람들에 의해 일종의 대안이 제시되었죠. 하지만 그 대안은 스트리트의 레이어를 가져다 쓰는 것 까지 였습니다. 


그리고 2017년 패션은 또 한 번 대규모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정치적 구호가 트렌드로 들어섭니다(링크). 하지만 이건 레이어를 가져다 쓰는 정도가 아닙니다. 구매자 층이 명백히 바뀌었고 패션계는 이런 흐름을 거스를 수가 없어요. 새로운 구매자들은 컬렉터, 인스타그래머, 파티 고어, 스타와 그의 팬 등등입니다. 이들은 예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빠른 흐름에 익숙하고, 동시간적입니다. 사고 체계도 사고 방식도 다릅니다. 그렇지만 고프코어 같은 자취를 남기긴 했지만 여전히 이들은 코스프레를 합니다. 직장인 코스프레가 아니라 좀 다른 코스프레이긴 하지만요. 아무튼 이렇게 해서 옛날 패션 브랜드와 지금 패션 브랜드 사이에 경계가 만들어 집니다.


결국 패션 vs. 패션은 1980년대 구성된 체제가 2017년 즈음 붕괴하기까지의 기록이 되었습니다. 즉 약간 이른 감이 있긴 하지만 구체제기반이라 할 수 있죠. 이제는 2017년 이후로 넘어온 브랜드와 그 전의 브랜드로 나뉘어 있습니다. 


아무튼 레플리카 패션을 주도하던 사람들은 헤비 듀티를 거친 사람들이고, 요새 어글리 프리티를 이끄는 사람들은 마르지엘라와 헬무트 랑의 패션을 본 사람들이죠. 가까운 과거는 현재에 큰 영향을 미치기 마련입니다. 자세히 바라볼 수록 지금을 더 잘 이해하게 되죠.


이런 이유로 워크룸 홍보 문구에 적혀 있던 올해 말을 목표로 발간 예정인 다음 책 "일상복의 운영(가제)"에 대한 계획이 상당히 수정되고 있습니다. (뭐 저만 아는 이야기라 편집자 님과 이야기를 해보긴 해야하지만) 비슷하긴 해도 아마 저 제목이 되진 않을 겁니다. 


이런 글의 결론은 뭐 언제나 명확하죠. 책 사세요~ 책이 왔어요~ 부디 많이 읽어주세요. 더 재미있는 이야기로 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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